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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시나브로 다가온 한반도의 봄

남북 정상 9·19 군사합의, 최근 일련 조치 속속 진행

과속 페달 일각 우려에도 북핵 교착에 돌파구 기대…훈풍 이어지게 힘 모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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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을 찬 채 부동자세로 서로를 노려보는 경비병들.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익숙한 모습이지만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달 1일 지뢰 제거부터 시작된 JSA 비무장화 작업이 25일 완료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비병들의 권총 휴대 금지는 물론 모든 화기와 탄약이 JSA 밖으로 옮겨지면서 정전협정 이후 65년 만에 완전한 비무장화가 이뤄졌다. 머잖아 1976년 ‘도끼만행사건’ 이전처럼 쌍방 경비병력의 자유왕래도 가능하게 된다. 삼엄한 대치의 분할경비구역이 아니라 말 그대로 평화의 공동경비구역으로 거듭난 셈이다.

JSA 비무장화는 남북 정상이 평양공동선언에서 서명한 9·19 군사합의의 첫 결과물이다. 이 작업이 남북 분단사에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면, 지난 1일부터는 보다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졌다. 남북이 지상, 해상, 공중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 것이다. 이로써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자아낸 서해 백령도와 연평도 주변 양측 해안포의 포문도 폐쇄됐다.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5㎞ 내 구역에서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부대의 야외 기동훈련도 중지됐다. 공중에서도 일정 거리 안에서 정찰기와 전투기 비행이 금지됐다.

걸핏하면 포격 공포에 시달리던 연평도 주민들조차 실제 눈앞에 보인 해안포 포문 폐쇄를 낯설게 받아들일 정도였다. 그러니 일반 국민들로서야 일련의 조치는 그저 뉴스의 한 장면일 뿐 더욱 피부로 와 닿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9·19 군사합의 당시만 해도 한낱 합의문 정도로만 다가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한 달여 새 한반도에는 군사긴장 완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과거 남북 간 숱한 합의문이 한낱 휴지조각으로 전락해버렸던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변화다. 이 모든 게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가져온 결과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비단 남북 군사합의 사항만 있는 게 아니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산림협력 등 제반 분야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물론 이들 변화가 항구적일지는 미지수다. 북미의 핵 협상 결과 여부에 따라 모두가 한순간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탓이다. 완전한 긴장 해소로 나아가느냐, 다시 팽팽한 대립으로 돌아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는 셈이다. 다만, 지난 1년간 밀고당기는 여러 협상과 함께 한반도에 이미 시나브로 봄이 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성큼 다가온 한반도의 봄에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다. 정작 핵심인 북핵 협상의 진척은 더딘데 남북관계만 과속 페달을 밟는 게 아니냐는 거다. 실제 금방 성사될 것 같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삐걱거리며 여전히 기약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순방 중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했던 대북 제재 완화 카드를 두고 너무 성급하다는 비판의 소리도 나온다. 한미 공조 균열이라는 약방의 감초도 어김없이 제기됐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한미 간 이견설을 두고 남북 군사합의서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언급을 했음에도 이런 우려는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안고 있는 한 최근 전개된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폐기의 선순환을 목표로 한다지만 북한의 궁극적인 비핵화 없이는 남북관계 훈풍은 사상누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 협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만큼 남북관계도 적절히 보폭을 조절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진 않다. 한미 양국이 비핵화와 대북 제재 문제를 함께 논의할 실무협의체인 ‘워킹그룹’을 설치키로 한 것도 각각의 의도가 어떻든 이 같은 속도조절론이 힘을 얻은 결과다.

그러나 9·19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이 최근 진행 중인 일련의 비무장 조치를 두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서해 완충수역 설정과 관련된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이나 비행금지 구역 설정으로 감시·정찰 작전이 제한을 받는다는 주장 등이 그 예다. 사안의 본질에는 눈을 감고 지엽적인 문제를 침소봉대, 논란거리로 만들려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남남 갈등을 조장할 뿐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북핵 폐기가 멀고도 지난한 길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한반도에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봄이 오고 있다. 9·19 군사합의의 가시적인 성과다.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칠 순 있겠지만 시나브로 다가온 봄이 물러나진 않는다. 다소의 삐걱거림이 있다 해도 넘지 못할 장애가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남북관계의 진전이 더 필요하다. 비핵화란 목표를 위해 지금은 어렵사리 찾아온 한반도 훈풍에 힘을 몰아주는 게 순리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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