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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비리공화국의 발코니 /김승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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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11-06 20:22:53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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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가을이다. 창밖에서 유혹하는 햇살을 따라 모처럼 아파트 정원 벤치에 누웠다. 좋다. 계절을 머금고 볼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시간을 부여잡고 나부끼는 잎새. 눈을 감는다.

머리는 찜통더위 때 에어컨 없는 만원버스처럼 연일 TV에서 나오는 비리 뉴스로 가득 차 있다. 사립유치원의 92%가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지적되었고, 대부분은 정부지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회계비리란다. 민간요양원 역시 다를 바 없다 한다. 직원 95%가 부정청탁 채용으로 드러난 강원랜드에 비하면 약과지만, 서울교통공사엔 정규직 전환 108명이 직원 친·인척이란다. 이런 부조리에 대처해야 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자기 자식을 위해 위장전입하고 다른 많은 비리 의혹을 받는 분이 되었다. 직전 대통령이 탄핵을 받고, 나란히 감옥에 있는 것도 비리 때문인데 그걸 청산하겠다며 나선 정권도 별 수 없다. 관행처럼 패거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정치인들은 내로남불이라 공방하지만, 그 말은 모두 다 해 먹었다는 고백으로 들릴 뿐이다.
부산은 뭐 다르랴. 개발이 불가한 공공의 땅을 사유화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바꾸고 특혜를 주었다. 인맥과 권력이 동원되고 청탁과 금품이 오갔다. 학자들은 보고서를 만들어 타당성을 부여하고 심의에 들어가 면죄부를 발행했다. 설계사무소도 이에 뒤질세라 설계비를 부풀려 비자금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면서 높이 규제도, 불허 용도도 풀리고, 협박으로 건설사에 공사를 맡겨 해운대해수욕장 한편이 그렇게 사유화됐다. 정무수석, 국회의원, 경제특보 등이 줄줄이 구속됐고, 정권교체까지 되었는데 새 기관장후보들도 연루 사실이 알려지며 사퇴했다. 그저 명절선물에 불과하다지만 이 역시 총체적 비리의 기본 구성 요소다. 엘시티는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법과 각종 심사와 심의로 사업의 목줄을 쥐고 있는 권력과 자본 놀음에 용돈 받고, 밥 얻어먹고, 골프를 치며 우리의 일상이 비리가 되었다.

인생을 반백 년 이상 살았지만 아직도 헷갈린다. 자기 무덤 파듯 이런 칼럼이나 쓰고 있으니 한숨만 나온다. 지난 삶을 복기해보면 학교에서 배운 정직, 정의, 준법 이런 말들은 음모 같다. 세상에서 실제로 통용되지 않는 사이비 교리를 믿는 호구 만들기 프로젝트 같다. 인간 본성인 양심과 약속으로 세워진 공동체, 적어도 아이들 보기 부끄럽지 않느냐는 호소는 현실 도피를 위한 변명이 됐다. 열 명 중 아홉이 비리라면 법이 잘못된 거라 유혹한다. 매일 나오는 뉴스는 너는 아직도 세상을 모르냐는 질책 같다. 친·인척 위장 취업이나 회사 차량 사유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속삭인다. 어떤 건축주는 한심한지 진심 어린 충고까지 해주신다. “돈 벌고 싶으면, 정부가 시키는 것, 반대로만 하세요.”

어지러운 생각에 역류하는 신물을 느끼며 눈을 떴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아파트 건물. 그래 문제는 발코니다. 우리 회사가 설계한 이 넓은 아파트 단지, 수많은 건물 어느 세대에도 발코니 하나 없다. 예전엔 집집마다 나와 앉을 수 있는 발코니가 있었다. 누군가가 발코니 끝을 막아 방을 넓혔다. 이걸 본 업자들은 작정을 하고 불법 발코니를 만들어 ‘서비스 면적’, 즉 공짜라고 팔았다. 처음엔 단속이 심했다. 벌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웃는 듯 더 많은 발코니를 없앴다. 그렇게 발코니는 사라졌고, 이제 더 이상 발코니 확장은 불법이 아니게 되었다. 건축가들은 발코니 면적을 빼면 살 수도 없는 집을 설계하고 거의 모든 아파트 도면엔 발코니가 있지만 실제로 발코니는 거의 없다. 가족들이 다 떠난 넓은 집에도 발코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건물 중 이 가을이 잠시 머물다 갈 발코니 하나 없다.

조삼모사다. 발코니를 제외한 전용면적을 비싸게 파는 것과 발코니를 포함해서 좀 싸게 파는 것의 차이를 알 수 없다. 나는 왜 존재하지도 않는 발코니 도면을 그리는지 설명할 수도 없다. 의지가 없는 거다. 위장전입으로 학교에 들어가거나 현상설계 심사에서 뇌물 준 사실이 적발되면 학생과 건축사무소의 학력과 자격을 박탈하면 되는 일이다. 치러야 할 대가가 싸니까 모두 비리보험에 드는 거다. 실제로 발코니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모든 자질구레한 비리와 음모까지 다 들어날까봐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다. ‘김영란’이란 분이 이름뿐인 유령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린 발코니 없는 나라에 사는 거다.

일신설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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