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유독 축제다 시상식이다 해서 이런저런 행사가 펼쳐진다. 연례행사처럼, 그래서 마치 우리가 여태껏 이 날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악수도 하면서 무대를 마주보며 앉는다. 상을 받는 이도 그렇겠지만 일부러 시간을 쪼개 찾아 온 축하객들은 행사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진중하면서도 경건한 기운을 받으며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며칠 전에 필자가 참석했던 시상식이 끝날 무렵 진행자가 농반 진반으로 했던 말은 이랬다.

“자, 우리도 수상자들처럼 열심히 써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요.” 엄숙한 자리에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던진 가벼운 인사말이었으리라. 무대가 마련되어 주인공이 올라가고 조명을 받는다. 분위기가 달아오르면서 절정에 달하더니 이윽고 막이 내린다. 행사가 끝나 썰렁해진 무대를 뒤로하면서 삼삼오오 뒤풀이를 하거나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날의 행사는 마무리된다.

축제가 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문화장치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별로 없을 줄 안다. 성공적인 축제를 위해 마련한 무대에서 행해지는 온갖 퍼포먼스는, 그것이 아무리 조잡하거나 즉흥적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엄숙한 장소에서 행하는 제의(祭儀)와 닮아 있다. 제의가 펼쳐지는 무대에서는 무대를 경계로 해서 어떤 ‘성스러움’이 형성되는 것 같다. 아니 무대 자체가 성스러움이 고여 있는 성전(聖殿)이다. 성공적인 축제일수록 카타르시스 효과는 커진다. 감정적 정화작용의 일종인 카타르시스가 고대 비극의 주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 그대로다.

무대 위에 선 사람은 무대가 주는 공간적인 상징 때문에 긴장과 불안을 느낀다. 공연을 하는 이든 상을 받는 이든 마찬가지다. 그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무대에서 펼치는 행위와 자신 사이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감 때문에 마치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예외가 있다면 록 페스티벌이나 콘서트 현장 정도일 것이다. 이들 공연은 아티스트와 관중이 음악으로 단일한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하기에 무대 안팎의 구별이 용이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예술가와 수용자가 직접 소통하는 현장이기는 하지만 수용자가 일상에서 간접적으로만 느꼈던 아우라의 크기와 무게는 훨썬 더해진다.

축제, 제사, 연극 같은 모든 문화적 퍼포먼스는 구성원들의 일체화된 메커니즘이다. 원래는 사회의 위기가 커져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공동체의 경계나 외부에 놓여 있는 어느 한 존재를 제의의 희생으로 삼았던 데서 연유했지만, 지금은 그 발생적 기원이 삭제된 채 형식과 상징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축제’라는 이름의 문화양식이다.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했던 때는 서로가 모방 욕망에 사로잡혀 경쟁이 극심해지면서 어느 순간 선망을 넘어선 원한과 분노가 사회 전체에 휩싸이면서부터다. 이런 상황이 상호폭력을 불러오고, 확산되는 폭력의 마법으로부터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모든 폭력적 대상을 한 존재에 투영해야만 했던 시스템이 희생제의다. 프랑스 문화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는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을 그의 주저 ‘폭력과 성스러움’을 비롯한 여러 저서에서 들춰냈다.

폭력이 성스러움으로 둔갑하는 과정에서 숨겨지고 삭제된 ‘불편한 사실’이 무엇이었던 간에, 오늘날 ‘선의의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체화된 사회적 행위와 의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이 ‘선의’라는 수사적 보호 장치를 등에 업는 순간 그 말이 지니는 폭력적 의미는 순화되거나 사라진다. 아니 ‘선의’라는 말을 ‘경쟁’ 앞에 갖다 붙이는 언어적 관습부터 우리들 내면에 자리한 희생 메커니즘에 대한 무의식적인 현장부재증명을 반영한다. 시상식이 끝날 무렵에 행사장을 가득 메웠을, 수상자를 염두에 둔 “나도 저이들처럼” 마음의 뿌리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나 곰곰이 생각한다. 무대 한가운데에 서고 싶은 욕망은, 비록 많은 사람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고 싶어 하는 자연적인 심리이기는 하지만 왠지 비극의 음산하고 불길한 전조처럼 느껴진다. 모든 사람이 욕망하는 상황은, 바로 그 욕망의 대상 때문에 파국의 절정으로 치닫게 하는 불씨를 불러내는 마법의 집단적 주문과도 같다.

오늘날에는 기원의 맥락이 희석되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령처럼 떠도는 초석적 폭력의 희생양은 우리 사회 곳곳에 다양한 이름과 형식으로 전이되어 나타난다. 무대에 선 자는 모든 이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평온한 일상의 특정한 때에 공연되는 무대의 주인공은 그렇게 슬픈 과거의 흔적을 거울처럼 우리들에게 내비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누가 그 무대에 과감히 올라설 것인가. 다르게 표현하자. 누가 맨 처음 무대라는 폭력적이고 성스러운 장소에 올라섰는가. 우리 가운데 어느 누가 그를 구해낼 것인가. 그러니 쓸데없는 경쟁일랑 집어치우자, 제발.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