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회는 국정감사를 끝내고 예산심의에 들어갔고, 미국의 중간선거는 최종 검표 마무리 단계에 있다. 나라마다 다른 정치 일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 아쉽게도 부정적이지만 ‘막말 정치’라는 공통점이 그것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의회의 본질인 토론 문화를 키워왔기 때문에 막말 정치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사정은 많이 바뀌었다.
다 알다시피 막말 정치는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었다. 그러나 그 원인 제공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정적이었던 고 존 매케인 상원이었다는 정치 분석이 있다. 석 달 전 매케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애도의 물결이 일었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부음에 묻혔지만 매케인의 정치 행보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비판의 핵심은 그가 ‘리얼리티 쇼 정치(Reality Show Politics)’가 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것이다. 매케인은 200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고,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당시 알래스카 주지사였던 사라 페일린을 지명했다. ‘중앙 정치문화에 물들지 않은 젊고 진취적인 여성’ 후보라는 장점을 내세웠다.
하지만 페일린의 단점은 금방 드러났다. 기본적인 정책 질문에도 더듬거리며 동문서답하기 일쑤였다. 반면 선동적인 발언은 서슴지 않았다. 민주당 후보 오바마를 비난하기 위해 인종 문제를 활용했고 오바마가 테러리스트와 어울린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매케인 캠프의 선대본부장은 후에 “선거 운동이 아니라 엉망인 리얼리티 TV 쇼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결국 공화당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페일린에게 영감을 받아 그녀를 따라하는 정치인이 여기저기 등장했다. 공화당에는 아무 말이나 하는 후보를 불편해 하지 않는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공화당의 극우 운동에 불을 붙인 정치적 스타일이 확산되면서 트럼프가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선거 후 페일린은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진행 계약을 맺었고, ‘새로운’ 정치 스타일은 리얼리티 쇼 경험을 갖고 있던 트럼프에 의해 계승되었다. 트럼프의 대통령 임기는 진행 중이다. 정치인에게 공과가 있다는 것은 흔한 말이다. 그러나 그가 막말 정치의 폐해를 끼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우리 정치인들의 막말은 최근 10년이 아니라 더 오랜 된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 대의민주주의 정치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정치적 매너가 성숙하지 못했다는 변명도 있을 수 있다. 우려되는 것은 막말 정치의 도가 점점 심해진다는 데 있다.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막말 경연을 펼치는 듯했다.
정치인들은 왜 막말을 하는 걸까. 단순한 심리 분석을 넘어서 좀 더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그들의 사고 능력이 걱정된다. 생각을 하려면 언어가 필요하다. 언어가 생각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굳이 말을 만들어 표현하면 막말은 ‘막 생각’을 만들어낸다. 막말에 습관이 들면 사고 능력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또한 막말을 자주 한다는 건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라는 뜻이다. 남에 대한 배려가 없다. 남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언어들을 너무 쉽게 쓴다. 정치인들은 공동체를 위한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공동체 구성원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른바 ‘프로 정신’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공인들의 실언도 많다. 말실수는 생각과 언어가 분리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쉽게 말해, ‘별 생각 없이 말할 때’ 언어가 일으키는 사건인 것이다. 이때 생각의 자리는 고정관념이 대체하는데, 실언이 선입견을 표현할 경우가 많은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실수이니까 악의는 없을 수 있지만 이것도 습관이 들면 다른 사람들에게 큰 해악이 된다.
물론 전문 정치인을 비롯한 공인들은 힘들게 일한다. 그들을 이해해준다는 차원에서 혹시 막말을 하면서 그것이 유머라고 착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막말은 그것이 아무리 웃음을 유발하더라도 유머가 될 수 없다. 어떤 정치인은 소위 ‘아재 개그’를 자신의 장기처럼 자랑하기도 하는데, 이도 유머와 동일시되기 힘들다. 생각하고 공부해야 좋은 유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머에 관한 글을 여러 편 썼던 린위탕(林語堂)은 “유머의 인생관은 진실하고 너그럽고 긍정적”이라고 했다. 진실, 배려, 삶의 긍정성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 공인들은 더욱 그래야 한다.
막말이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고, 실언이 ‘생각 없이’ 말하기 때문이라면, 유머는 ‘깊고 넓은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자기 생각과 지식으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정보를 수집하는 ‘아재 개그’와 다르다. 유머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표현이다. 이런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도 공부해야 한다.
이제 막말 정치를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위한 팁이 생긴 것 같다. 막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해결될 것 같진 않다. 그건 소극적 방법이다. 이럴 땐 적극적 방법을 쓰는 게 상책이다. 언급했듯이 공부하고 생각하는 것은 적극적인 방법이다. 막말을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니라면, 좋은 말을 위해서 공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곧 명언과 명연설을 위해 공부하고 연습하며 실행을 위해 준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사실 역사 속 위대한 정치인들은 그렇게 해왔다.
명연설은 국민에게 두 가지 선물을 준다. 감동과 추억이 그것이다. 다른 한편 국민 개개인의 감동과 추억은 명언과 명연설을 한 정치인에게 세대를 이어가며 아주 실용적인 대가를 돌려준다. 선거에서 정치인에 대한 호의적인 입소문은 좋은 기억 속에서 재생되어 퍼지기 때문이다.
명연설을 하는 정치인이 국가에 하는 공헌도 있다. 특히 보수 정치인들이 목청 높여 주장해왔던 ‘국격’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국격은 거저 올라가지 않는다. 정치인 각자의 노력이 국격 고양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정치인의 명연설을 들은 지가 언제인가. 국민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국격을 위해서도 명연설이 듣고 싶다.
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