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선(積善)이라는 말이 있다. 착한 일을 많이 쌓는다는 의미다. 과거 거지들이 동냥할 때 사용하던 말로 다소 저속한 의미로 비쳐지기도 했지만 복을 적립하는 매우 고귀한 단어이다. 그럼 최고의 적선은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몸을 희생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적선일 것이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 법흥왕이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이차돈)이 몸을 바친 ‘원종흥법 염촉멸신’에 관한 내용이 있다. 법흥왕이 백성을 위해 복을 빌고 죄를 멸하기 위해 절을 지으려고 하자 신하들이 반대했다. 이때 22세로 사인 벼슬을 하던 염촉이 왕의 마음을 헤아려 자신을 희생시켜 왕의 뜻을 이루기를 간하였다.
이에 왕은 염촉에게 “살을 베어 저울에 달더라도 새 한 마리를 살리려 했고, 피를 뿌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라도 짐승 일곱 마리를 불쌍히 여겨야 할 것이다. 어찌 죄 없는 사람을 죽이겠느냐. 너는 비록 공덕을 쌓으려 하지만 죄를 피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다. 그러자 염촉은 “버리기 어려운 많은 것 중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저녁에 죽어 불교가 아침에 행해진다면 부처님의 해는 중천에 오르고 왕께서는 영원토록 편안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여기서 법흥왕이 언급한 살을 베어 저울에 달아 한 마리의 새를 살리려 한 이야기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일곱 마리의 짐승을 살리려 한 이야기는 불교의 뿌리 깊은 석가모니의 전생이야기인 자타카이다. 그중 시비왕과 마하살타 태자의 본생담에 관한 것을 의미한다.
우선 시비왕 본생 이야기는 이러하다. 옛날 시비왕이라는 자비심 많은 왕이 있었다. 그는 백성에게 뭐든 자비를 베풀었다. 이에 하늘의 제석천은 시비왕이 자비심 공덕으로 신이 될 것이라 질투를 느껴 계책을 세워 신하에게 일렀다. 신하는 그의 말을 듣고 한 마리의 새가 되어 시비왕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제석천 자신은 한 마리의 매가 되어 새를 쫓아갔다. 어느 날 시비왕 곁으로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매에게 쫓기고 있다며 그의 겨드랑이 속으로 숨었다. 곧 매가 쫓아와 왕에게 배가 몹시 고프니 새를 내어달라고 요청했다. 자비심 많은 왕은 새 대신 다른 고기를 주겠노라고 답했지만 매는 왕에게 피 흘리는 생고기를 달라했다. 그러자 왕은 칼로 그의 허벅지를 잘라 매에게 주었다. 매가 새 대신의 고기라면 새와 똑같은 무게로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자 이에 왕은 바로 저울을 가져와 한쪽 접시에는 새를 놓고 다른 한쪽 접시에는 자신의 살을 달았다. 그러나 새의 무게와 똑같아지지 않았다. 드디어 시비왕은 그의 살을 아주 조금씩 도려내다가 드디어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매는 왕을 보고 감동하며 무엇 때문에 이 같은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보시행을 하느냐고 물었다. 왕은 자신이 죽어 천상에 남아 제석천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가 되어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이라 말했다. 이에 신은 왕에게 용서를 빌며 천상에 올라가 묘약을 갖고 내려와 왕의 몸에 바르니 상처는 깨끗이 아물고 더욱 빛을 발했다고 한다. 이때의 시비왕은 바로 석가 전생의 석가 자신이었던 것이다. 시비왕은 그 공덕으로 결국 귀인이 되고 깨달은 자인 석가모니가 된 것이다.
마하살타 태자 본생담 역시 석가의 전생담에 관한 것이다. 하루는 굶주린 어미 호랑이가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하자, 이를 불쌍히 여긴 마하살타 태자가 벼랑에 올라가 자신의 몸을 던져 호랑이의 먹이가 되어준 자기희생의 감동적인 스토리다. 굶주린 호랑이 먹이가 된 사신사호(捨身飼虎) 장면은 일본 호류지 소장의 다마무시즈시(玉蟲廚子)에 그려진 것뿐 아니라 둔황벽화나 키질벽화 등에서도 확인된다.
이처럼 법흥왕이 염촉에게 언급한 새와 짐승 이야기는 석가가 전생에 자신을 희생한 내용이다. 자신의 몸을 바친 최고의 적선이라 할 수 있다. 그 적선으로 말미암아 그는 귀인이 됐고, 성자가 됐다. 법흥왕은 이후 신하들 앞에서 염촉의 목을 베니 흰 젖이 한 길이나 솟구쳤다. 하늘과 땅이 반응하고 꽃비가 내렸고, 물고기와 자라가 튀어 올랐고, 원숭이가 떼 지어 울었다고 전한다.
연말이다. 복(福)짓기 마지막 달이다. 기부나 적선을 하면 어떨까. 까먹은 복이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옛날에 거지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적선을 외친 것은 우리에게 복 지을 기회를 준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은 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인문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