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사람마다 불황을 걱정한다. 얇아진 지갑 탓에 연말 모임도 왠지 부담스러운 요즘이다. 경제 현장도 녹록지 않다. 주식시장은 폭락하고, 제조업 경기는 바닥을 기고,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공직자는 나라 살림, 경영인은 실적 악화, 샐러리맨은 감원 공포, 증권사 임원은 주가 하락, 가정주부는 살림살이 걱정이다.
하긴 되돌아보면 과거에도 호황이라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적어도 서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언제나 불황이었다. 서민에게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심지어 십 년 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심지어 대통령의 시정연설이나 재벌총수의 새해 인사말에도 ‘어려운 경제 여건’이라는 수식어는 해마다 빠지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최고 호황기였다는 산업혁명 시절에도 영국 국민의 90%는 불황을 입에 달고 살았다니 세계 경제역사도 호황보다 불황의 세월이 더 많았던 듯하다.
사실 합격을 결정하는 시험점수처럼 호황과 불황의 경계선을 딱 부러지게 금을 긋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제통계 지표상 호황과 불황은 분명하게 상반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호황기에는 기업 이익이 증가하고, 세수가 늘어나 국가 재정이 풍부해진다. 임금은 상승하는 반면 실업률은 떨어져 소비 구매력이 높아진다. 시중에 돈이 넘쳐나니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도 들썩거린다. 하지만 불황기에는 이와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면 지금 상황은 어떤가. 최근 언론을 보면 올해 우리나라 기업들의 이익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며 떠들썩하다. 기업이익이 늘어나면서 세수도 예상치를 초과해 정부의 재정이 넉넉하다. 수년간 이어진 저금리로 시중자금이 풍부하다 보니 주식시장도 부동산시장도 고공행진이다. 분명 경제지표를 보면 호황이다. 미국은 지나친 경기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계속 금리를 올려야 할 정도다.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가 적어도 통계지표는 호황이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보통사람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역대급 불황이다. 이는 우리만의 사정은 아닌 듯싶다.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도 서민이 느끼는 경기는 불황이다. 실업률은 치솟고, 물가는 뜀박질하고, 임금은 제자리걸음이고, 제조업 경기는 바닥이고, 문 닫는 자영업자는 속출한다. 시중금리가 토끼뜀을 하면서 가뜩이나 가계부채에 허덕이는 서민들은 빚더미에 깔려 압사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경제지표는 호황인데 체감경기는 불황인 엇박자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경제지표와 체감경기의 불일치 현상이 나타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갈수록 커지는 자원배분의 불균형이다. 호황의 과실이 특정산업이나 소수집단에 집중돼 경제 전체에 낙수효과가 퍼지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경제를 보면 반도체만 호황이고 나머지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모두 극심한 불황에 허덕인다. 더욱이 반도체는 고용 효과도 자동차나 조선에 비해 크지 않다. 자원배분의 불균형 해소는 정부의 몫이다. 정부는 호황산업과 불황산업에 대한 차별적 정책을 통해 자원배분의 쏠림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
또 다른 이유는 급속히 변화된 산업구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제조업 중심의 자본집약적, 노동집약적 산업구조를 기술집약적 산업구조로 재편시켰다. 생산과 판매과정이 인터넷과 정보통신망으로 대체되니 고용 규모는 급속히 줄고 있다. 서비스업 고용의 중심이던 백화점, 음식점, 편의점은 이미 경영패러다임 자체가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결국 고용이 없는 기업이익 증가로 인해 통계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현상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통계지표와 체감경기의 불일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래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희망밖에 해결 방법이 없다. 경제는 계량지표 못지않게 기대심리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 앞날을 희망적으로 보면 현재 투자와 지출이 늘면서 호황을 앞당기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반대로 미래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면 현재 소비와 투자가 감소해 불황을 현실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행동주의 경제학자인 미국 듀크대 댄 엘리얼리 교수는 “미래의 경제는 현재 경제 참여자들의 감정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미래 경제의 호황과 불황을 결정하는 주체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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