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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의 세설사설] 노란 조끼, 브렉시트, 그리고 리더십의 실종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2-16 18:45:07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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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건너편 프랑스와 영국이 호떡집에 불난 듯 시끄럽다. 파리에서 마크롱 정권이 ‘반서민정책’을 편다는 불신에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이 과격 시위를 벌이고 있다. 런던에선 캐머런 전 총리가 ‘브렉시트’ 자충수로 사임하고 메이 총리가 EU에 재협상하자고 매달리고 있지만 반응은 냉담하다.


두 나라 모두 지도자의 리더십 부족이 나라를 위기로 끌고 갔다. 문재인 정권도 마찬가지다. 경제 위기상황을 국민에게 솔직히 알리고 고통 분담을 청해야 한다. 김대중 정권 때의 ‘국민과의 대화’를 되살려 정부 정책을 놓고 토론의 장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프랑스와 영국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구 건너편 프랑스와 영국이 호떡집에 불난 듯 시끄럽다. 파리에선 노란 조끼를 입은 시민이 연일 과격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권이 ‘반서민정책’을 편다는 불신이 쌓이고 쌓여 성난 민심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런던에선 ‘브렉시트(Brexit)’를 둘러싼 혼란이 극심하다. 대책 없는 ‘탈유럽연합(EU)’이 국가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팽배하다. 21년 전 악몽 같은 ‘IMF 사태’를 겪었고, 2년 전엔 광화문과 서면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던 우리로선 그들의 일이 마냥 강 건너 불처럼 보이지만은 않는다.

우선 프랑스부터. 노란 형광조끼를 입은 시위대가 한 달 가까이 프랑스 전역을 휩쓸고 있다. 고교생도 다수 참가했다. 발단은 유류세 인상이란 건 다들 아는 일. 기름에 세금을 높게 매기면 부유층보다는 가난한 이들의 삶이 훨씬 팍팍해진다. 일단 시위가 터지자 마크롱 정권의 ‘친부자정책’ 전체가 타깃이 돼 삽시간에 저항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던 거다. 중도 실용노선을 내건 마크롱은 좌우 진영 싸움에 지친 국민의 지지로 지난해 5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그는 법인세와 부유세를 깎고 노동개혁을 밀어붙이는 친시장정책을 썼다. 문제는 이게 서민들의 박탈감을 부추긴 것. 다락같이 오르는 집세와 물가에다 사회보장제도마저 축소되자 “마크롱은 부자를 위한 대통령”이란 불만이 터져 나왔다. 취임 전후 60%를 오르내렸던 지지율도 20%로 폭락했다.

사태를 악화시킨 건 마크롱 자신이었다. 일자리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20대 청년에게 “일할 의지만 있다면 일자리가 널렸다”고 핀잔해 반발을 샀던 터다. 자동차에 비치된 노란 조끼를 꺼내 입은 시위대가 등장하자 “폭력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물대포와 최루가스, 급기야 장갑차까지 동원했는데도 시위가 격화되자 그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유류세 인상 유보는 물론 최저임금 인상, 저소득 은퇴자의 세금 경감을 약속했다. 초과근무수당엔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뒤늦은 항복 선언은 국민의 냉소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더 절박하다. 당초 영국이 EU에서 빠지겠다고 한 건 ‘밑지는 장사’가 아니냐는 불만 때문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그리스가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고 포르투갈, 스페인, 터키도 재정난에 봉착했다. EU가 이들 회원국에 금융 지원하면서 다른 회원국의 분담금이 늘어나자 영국에서 반EU 정서가 커졌던 거다. 가난한 동유럽 회원국에서 취업난민이 쏟아져 들어온 것도 또 다른 이유. 전통적으로 고립주의를 채택해 왔던 영국으로선 라이벌 독일이 EU의 맹주 노릇을 하는 것도 눈꼴시었을 터.
정치권에서 브렉시트를 놓고 찬반양론이 격화하자 재작년 6월 캐머런 당시 총리가 국민투표에 붙였다. 반대여론을 잠재우겠다는 계산이었지만 천만 뜻밖에도 국민이 EU 탈퇴를 선택했다. 캐머런은 사임하고 메이가 총리가 돼 EU와 이혼협상을 벌여왔지만 지난 2년 반 동안 나라가 완전히 쪼개져 버렸다. 국민들도 뒤늦게 이게 예삿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관세가 부활해 거대한 유럽 자유 시장을 포기하면 타격이 엄청날 거라는 거다.

쏟은 물을 주워 담을 수도 없어 협상이 계속됐지만 협상안이 반대 여론에 부닥치면서 지금 영국은 혼돈의 도가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백스톱’이다.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이지만 오랫동안 치열한 독립투쟁을 벌여오지 않았나. 겨우 그 문제를 가라앉히긴 했지만 같은 섬에 있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사실상 한 나라나 마찬가지. 브렉시트가 확정되면 EU에 잔류하는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사이에 강제적인 국경이 설치되고 관세가 매겨질 판이다. 그걸 피하려고 메이는 EU에서 탈퇴는 하되 관세동맹엔 끼이겠다는 협상안에 합의한 것. 그러니, 그럴 바에야 EU에 위자료까지 주면서 왜 이혼하느냐는 반발에 부닥칠밖에.

협상안의 의회 통과가 어려워지자 메이는 타결된 협상안을 재협상하자고 EU에 매달리고 있지만 반응은 냉담하다. 이혼하자 해서 재산분할 협의까지 마쳤는데 새로 더 내놓으라니 들어줄 리 만무한 거다. 결국 지난주 집권 보수당 내에서 메이에 대한 불신임안까지 제출됐다. 천신만고 끝에 부결됐지만 메이의 가시밭길은 멀기만 하다. 협상안을 수용하자는 주장, 국민투표를 다시 해서 EU에 잔류하자는 주장, 협상이고 뭐고 그냥 탈퇴하자는 ‘노 딜 브렉시트’까지 중구난방이다. EU에 추가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면 협상안은 의회에서 부결될 공산이 크다. 그럼 메이는 사임해야 하고 브렉시트는 오리무중이 된다. 국민 여론은 갈가리 찢겨 있지, EU와 이혼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판이어서 영국은 진퇴양난이다.

프랑스와 영국이 이렇게 된 까닭은 뭘까. 두 나라 모두 지도자의 리더십 부족이 나라를 위기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게 아닐까. 현대 민주주의의 발상국인 영국과 혁명의 나라 프랑스는 최상위 선진국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파리에선 돌과 화염병, 최루가스와 물대포가 어지럽게 교차하고 런던에선 브렉시트 찬반 시위대가 의회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사태를 보자니 이게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마크롱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들고 나온 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경제 활력을 되살리자는 뜻일 터. 유류세 인상도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대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책은 서민의 삶은 내팽개친 채 부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오고 말았던 것. 39세의 혈기방장한 마크롱은 소통을 통한 설득 대신 권위주의적 자세를 보이다 국민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그렇게 보면 마크롱의 문제는 ‘불통의 리더십’이다.

반면 영국의 문제는 ‘리더십의 실종’이다. 야당과 국민 일부에서 EU에 대한 불만이 제기됐을 때 당시 총리 캐머런은 탈퇴가 불러올 여러 난제를 국민에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했어야 옳았다. 국민투표로 반대세력을 잠재울 수 있다고 안이하게 생각했다가 덜컥 ‘EU와의 이혼’이란 결론이 나오자 사임해 버린 것은 무책임했다. 후임인 메이도 찬반양론의 틈바구니에서 EU와 협상하면서 우왕좌왕하다 ‘이혼’도 ‘재결합’도 아닌 ‘조건부 별거’란 죽도 밥도 아닌 협상안을 들고 와 스스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전체 상황을 통찰해 책임감과 결단력을 발휘하는 게 지도자의 최대의 덕목이란 걸 실감케 하는 게 요즘 영국의 사정이다.

글쎄, 내가 프랑스와 영국의 사정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우리 자신의 문제 때문이다. 집권 1년 반이 지난 문재인 정권에도 이런저런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80% 후반으로 치솟던 지지율이 50%를 밑돈다. 게다가 청와대 내부의 기강 해이, 이재명 경기지사 문제 등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지 않나. 일각에선 대통령이 이전보다는 국민과 소통하려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았나 하는 우려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경제정책에 대한 확신이 집권세력 내부에서도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 필요하다면 ‘소득주도 성장’의 속도 조절도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너무 좌고우면할 일도 아닌 성싶다. 대통령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사사건건 흔들어대는 보수언론의 호들갑에 휘둘릴 것도 아니다. 상황 논리에 떠밀려 시나브로 하나 둘 양보하다 보면 이 정권의 슬로건인 ‘사람 중심의 경제’ 자체가 실종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어 떼에게 뜯어 먹혀 뼈만 앙상하게 남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속 거대한 청새치처럼.

‘독단’과 ‘우유부단’의 중간지점에서 ‘소신’과 ‘소통’의 리더십을 양수겸장으로 펴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다. 하지만, 그게 대통령에게 맡겨진 책무가 아닌가. 한국 경제가 구조 조정기에 들어서서 단기간에 고용과 소득 증대를 이루기 어렵다면 국민에게 상황을 솔직히 설명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으니 어느 때까지만 고통을 분담해 달라고 청할 일이다. 프랑스와 영국을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거다. 말 나온 김에 제안을 하나 하겠다. 김대중 대통령 때의 ‘국민과의 대화’를 되살려 보면 어떨까. 단, 쇼는 안 된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경제학자와 야당 인사도 나오게 해서 TV 생중계로 제대로 된 토론의 장을 만들어보라는 거다.

이제 한 해가 저문다. 경제부총리를 바꾸고 청와대 참모진도 일부 개편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시나브로 풀어지기 시작한 집권세력 내부의 나사도 다시 죄어야 할 때다. 새해엔 신발끈을 고쳐 매고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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