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 강남 아파트 재건축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대형 건설사들이 조합원 등에게 수십억 원을 건넸다는 수사 발표가 있었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돈을 건네고 공사를 따내려고 한 것이다. 재개발, 재건축은 많게는 수조 원까지 드는 사업이라 이권이 엄청나기에 법을 무시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을 저질렀다.
경쟁에 있어서 규칙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서울 모 여고에서 벌어진 시험문제 유출도 결국 공정한 경쟁을 하지 않아 문제가 된 것이다. 공정이 왜 중요한지는 여기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반칙은 힘 있고 가진 자만 유리하고 정작 실력 있는 사람이 설 자리가 없고 그러한 불평등 상태를 지속시킨다. 다양한 구성원이 어우러져 조화롭게 살아가야 할 우리 사회가 존립할 수 없게 만든다. 공정한 경쟁을 한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알고 상대방을 존중함에 있다.
인문학의 사전적 정의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하지만 결국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리라. 한자로 인문학이라고 할 때 ‘글월 문(文) 자’도 원래는 무늬라는 뜻이다. 사람이 가지는 저마다의 무늬를 알고 존중하는 것이다. 공정의 규칙을 지키고 이를 어기는 자에게 징벌을 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왜 사회의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를 아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게 사회 수준이며 이러한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 인문학이다. 요즘 인문학을 배우고자 하는 모임이 생기고 TV에서도 여러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책도 많이 나와 인문학 열풍이라 할 정도다.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인문학의 방향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것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려고 하는 경향이다. 취직을 위해, 영업에 도움이 되기 위해, 사람과 좀 더 많이 사귀기 위해 등등. 물론 인문학을 알고 그에 따라 이러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와 취직이나 영업이나 사람을 사귀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인문학 본래 목적은 아니다. 인문학을 배워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이해하게 된다면 반칙이라도 좋으니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이 줄어들 것이고, 사회 수준은 좀 더 올라가지 않을까.
형사법에 페리의 ‘범죄포화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이는 범죄란 항상 포화상태에 있다는 것인데 동일한 사회조건이라면 범죄자를 격리하더라도 여전히 같은 수만큼 범죄가 발생하며 범죄의 발생은 항상 포화상태에 있다는 내용이다. 범죄를 엄벌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 조건의 변화, 즉 사회의 수준을 높여야 함을 말해준다. 형사체계가 다른 미국에서 흉악범에 대해 수백 년의 형을 선고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종류의 범죄에 수 년 또는 십수 년의 형을 선고하면 처벌이 미흡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미국이 우리보다 흉악범죄가 적게 발생하는가. 성범죄에 대해 가장 엄한 처벌을 하고 있는 나라가 성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나라다.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벌만으로 우리 사회의 공정을 지키기는 어렵다. 참여자 모두 공정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납득해야 한다. 그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인문학이다. 그렇기에 공정한 사회를 위해 인문학이 필요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을 내놓을 때 새로운 기능을 고민하면서 공학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성을 이해하는 인문학적인 접근을 해 그에 따라 설계하고 기능을 추가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잡스 사망 후 애플의 제품에서 이런 인문학적 접근이 사라질까봐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첨단 기능만 추가되고 더는 사람의 감성을 만족시키는 제품은 나오지 않을까봐 말이다. 미국의 명문대 중 세인트존스 칼리지가 있다. 그런데 이 학교는 대학 4년 내내 전교생이 소크라테스부터 니체까지 200권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며 에세이를 쓰는 게 전부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미래를 내다보지만 그 방법은 오로지 과거를 깊이 탐색하는 것이라는 평을 한 적이 있다. 인문학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학문이고 우리의 생활을 훨씬 풍요롭게 한다. 공정은 바로 그 인간다움에서 나오며 이를 배우는 게 인문학이다. 인간다움이 전제되지 않으면 공정사회도 어렵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