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지상파로 중계된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의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을 봤다. 황금시간대인 토요일 밤에, 그것도 지상파에서 월드컵도 아닌 동남아 국가 간의 축구 경기를 생중계한 것은 매우 이채로운 일이었다. 우리의 관심이 고마운지 베트남 언론에서는 우리나라 지상파에서 주말 저녁에 드라마 편성을 변경까지 하며 자국의 축구 경기 결승전을 중계한다는 소식을 빠르게 전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이 바로 최근 베트남에서 매직 내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박항서 감독이기 때문이리라.
뉴스를 통해 본 박 감독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경기를 앞둔 베트남 축구팬들은 경기장 주변에서 박 감독의 복장을 하거나 사진을 들고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 베트남에서는 박 감독의 얼굴을 새기는 헤어스타일이 유행이라고 한다. 경기장에도 마치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어리둥절할 정도로 붉은 물결 속에 금성홍기와 함께 많은 태극기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실로 베트남 국민들의 박 감독과 우리나라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결승 1차전 시청률이 5%를 넘었고, 이번 2차전은 18%를 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도 이미 박항서 감독 신드롬이 생긴 듯싶다. 양국 국민들의 하나 된 응원 덕분이었을까. 경기 결과 베트남이 말레이시아를 꺾고 10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7년 10월 사령탑을 맡은 박 감독이 1년 남짓 만에 또 한 번 베트남 축구의 새 역사를 쓴 것이다.
우승 후 박 감독은 “축구 지도자라는 조그마한 역할이 조국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우호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습니다”라고 겸손하면서도 애국적인 소감을 피력했다. 국제신문에 연재되는 도청도설(지난 7일 자 19면)은 박 감독 효과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박 감독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박카스가 베트남 출시 4개월 만에 280만 병이 팔릴 정도다. 베트남 선수들이 체력 증진을 위해 인삼을 먹은 게 알려지면서 고려인삼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직접 달여 먹는 약탕기까지 인기다. 그의 고향인 경남 산청군 여행상품도 출시될 예정이다. 그와 선수 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나온다. ‘박항서, 열정을 전하는 사람’이 오는 14일 베트남 전국 영화관에서 개봉 예정이다. 박 감독이 베트남을 바꾸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지 모른다. 하지만 삶에 희망을 주는 촉매제가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리더십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 감독이 현지에서 국민영웅으로 추앙받으면서 경남 산청군이 베트남을 방문해 개최한 농산물 판촉전도 대박을 터뜨렸다고 한다(지난 13일 자 10면). 이제 박 감독은 우리나라 최고의 민간 외교사절이라 칭송해도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박 감독에게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바로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친근하고 소탈한 리더십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 우리나라 프로팀에서 더 이상 감독직을 제안받지 못하자 그는 고민 끝에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했다. 당시 이 소식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국을 떠날 때도 조용했고, 베트남에서도 한국의 ‘삼류 감독’ 정도로 보도됐다. 비록 단기간이지만 한때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감독까지 지냈던 그에게 끊임없는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축구계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한 베트남에 선뜻 진출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당초에는 보수나 대우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한국인의 근면함이라도 보여주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갔다고 한다. 선수들보다 먼저 연습장에 나가고 직접 선수들의 발 마사지를 해주는 등 스킨십을 통해 친밀감을 쌓았으며 부모의 마음으로 선수들을 대했다. 부상 선수를 위해서는 자신이 배정받은 비즈니스석을 양보하기도 했다. 그 결과 선수들은 마음을 열고 인간미 넘치는 박 감독을 아빠 또는 스승으로 부르며 그의 지도를 따랐다. 박 감독의 이러한 리더십이 베트남 국가대표팀을 이른바 원팀으로 만들었고,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의 리더십은 이제 ‘파파 리더십’으로 불린다. 박항서 매직은 잔잔한 감동을 넘어 배려와 소통이 필요한 우리 사회에도 귀감이 될 만하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