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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요약 요정’이 된 사연 /하아무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2-19 19:32:5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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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시인의 딸로부터 ‘요약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전적으로 요정은 ‘서양의 전설이나 동화에 많이 나오는 자연물의 정령. 아름답고 친절한 여성으로 나타나며 불가사의한 마력을 지님’으로 정의돼 있다. 외모도 내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다. 하지만 추악한 요정이나 나쁜 요정도 있으니 그렇게 부르지 말란 법도 없다. 어쨌거나 ‘요정’이라는 간질간질한 별명을 얻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연말이 다가오면 수많은 책이 쏟아진다. 여러 기관으로부터 받은 창작지원금을 결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서 각종 시집과 소설집, 수필집이 답지하고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필자가 있는 지역에도 비슷한 시기에 세 시인의 시집이 나온 터라 묶어서 공동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본인이 열기에는 쑥스럽고 개인이 각각 열면 참석해야 하는 사람들로선 부담스럽기도 하니 그런 묘안을 짜낸 것이다. 여기에 필자가 사회를 맡았다.

출판기념회란 것이 어슷비슷하기 마련이다. 저자 입장에서는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노력을 보고하는 자리다. 출판사 입장에선 저자를 어떻게 만나서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하게 되었는지를 얘기한다. 하객으로 참석하는 가족이나 지인은 그런 저자의 땀과 눈물을 치하하고 축하한다. 대개 축사, 출판사 관계자나 저자 인사, 작품 낭송 혹은 낭독, 간단한 축하공연순으로 이어진다. 작품 해설이 더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분위기는 가라앉거나 뻔한 축하의 말을 늘어놓기 일쑤여서 어색하게 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저자가 자신의 작품 이야기를 진지하게 늘어놓아 분위기가 필요 이상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시집 뒤의 해설이 굉장히 깁니다. 이제 막 시집을 받아본 분들은 세세히 읽어볼 틈이 없었을 것입니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가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제가 좀 일찍 시집을 보고 해설까지 꼼꼼하게 숙지했습니다. 긴 해설을 간단히 요약해서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20쪽이 넘는 해설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사회자로서 이렇게 얘기하고 잠깐 객석을 둘러보았다.

다들 무슨 얘길 할지 궁금한 표정들이었다. 필자는 그들의 눈을 찬찬히 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 길고 긴 해설을 요약하면 딱 이렇습니다. 차암 좋은 시다!” 숨죽여 듣고 있던 객석에서 폭소와 함께 연이어 박수가 쏟아졌다.

세 시인 모두의 해설을 요약해주었다. 두 번째부터는 “요약해 드리겠다”고 하면 미리 미소를 짓거나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두 번째 시집도 “차암 좋은 시다!”로 요약되었다. 세 번째 시집 땐 “이제는 여러분들도 다 아시겠지요”하자, 객석에서 여러 사람이 선수를 쳤다. “차암 좋은 시다!”

그렇게 어색하고 무거워진 분위기를 조금 가볍게 만들어 진행했다. 출판기념회에 처음 참석해본 사람들은 무거운 분위기를 이해하면서도 겸연쩍어하고 부자연스러워한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자 “문학 행사도 이렇게 부담 없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거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출판기념회가 끝난 후 시인의 딸이 필자에게 다가와 “이제부터는 ‘요약 요정’님이라 부르겠다”고 했던 것. 큰 덩치와 투박한 말투에 어울리지 않는 별명에 온몸이 오글거렸다. 그런데 들을수록 발바닥을 간질이는 듯한, 그 오스스한 느낌이 싫지 않았다.

굳이 부언하고 싶은 한마디. 요즘 평론이 너무 소위 말하는 주례사 비평으로 흐르는 듯한 인상이란 것. 올해 발간된 문학서를 숙독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거의 대다수가 ‘해설’이나 ‘발문’이라는 이름으로 평론을 수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차암 좋은 작품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는 내용 일색이었다. 물론 책 뒤에 붙는 해설에서 좋은 작품이라고 추켜세우는 일은 결혼식장에서 주례가 신랑 신부를 “차암 훌륭한 인재”라고 상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를 깎아내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예전과 같은 예리함이 없다는 것, 서슬 퍼렇던 날카로움이 느껴지는 평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의 평론은 상아탑에 숨고 서양의 오래된 사상 뒤에 숨고 ‘서로 좋은 게 좋은’ 주례 뒤에 숨어버렸다. 이제는 작품 뒤에서 숨이 목까지 차올라 100m쯤 뒤처진 평론이 아니라 나란히 함께 뛰는 평론을 보고 싶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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