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민이라면 세계 평화만큼이나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을 염원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도시와 그 지역 연고의 프로스포츠 구단 간의 특별한 관계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지만 ‘구도(球都)’라 불리는 부산과 롯데는 좀 묘한 함수 관계가 성립하는 듯하다.
두 달 전 스포츠 부장으로 발령을 받은 뒤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내년에는 롯데가 우승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롯데가 우승에 대한 의지가 없다”거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등의 ‘애증이 충만한’ 조언을 전해주기도 한다.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면 선수들의 연봉을 대폭 인상해줘야 하는 데다 우승 보너스까지 안겨야 하는데 껌 장사로 성장한 ‘짠돌이’ 롯데가 팬들만큼 우승에 대한 갈증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롯데가 우승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런 오해와 억측이 아직도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데에는 롯데 구단의 책임도 상당 부분 크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멤버인 롯데는 1984년과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올해까지 26년째 소식이 없다. 정규 시즌 1위는 아직 한 번도 없다. 2011년 페넌트 레이스 2위가 역대 최고 성적이다.
일부 팬은 “롯데가 가을야구만 가면 마치 자신의 책무를 다한 것처럼 생각한다”고 비판한다. 전국 최고의 빅마켓인 부산에서 가을야구 정도만 해줘도 구단은 팬들에게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제기한다.
하지만 정당의 목적이 정권의 창출이듯 프로 스포츠 구단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리그 우승인 점은 분명하다. 이는 롯데 구단 관계자들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구단의 한 관계자는 “연간 구단 운영 비용이 400억 원을 웃돈다. 상당 부분은 그룹에서 지원을 받는 형태”라며 “그룹에서도 간절하게 우승을 원한다”고 항변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아울렛, 제과, 호텔, 시네마 등 유통 부문이 그룹의 주력 사업임을 감안하면 롯데의 우승이 그룹 계열사에 가져다 줄 시너지 효과는 아주 크다. 또 최근 그룹 오너인 신동빈 회장이 전 정권과의 유착 혐의로 재판을 받는 등 그룹 이미지 개선도 시급한 데 우승보다 효과가 큰 것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구단은 이런 비판에 다소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투자에 인색하다고 비판받던 롯데는 지난 3년간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500억 원을 풀며 큰손 역할을 했다. 그만큼 우승에 대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이지만 성적이 투자만큼 따라 주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롯데그룹에도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이 필요하지만 부산 시민에게 롯데의 우승은 더 절실하다. 부산은 이미 활력을 잃은 도시가 됐다. 기업의 역외 유출과 일자리·인구의 감소, 전국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은 노인 인구 비율, 전국 최저의 합계출산율 등으로 역동성이 없는 도시로 추락됐다. ‘하루하루가 별반 다를 것 없는’ 부산에서 단 한 곳, 사직구장만은 예외다. 롯데의 상승세는 사직야구장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에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3만 관중이 한마음으로 열창하는 ‘부산갈매기’는 침체된 지역경제와 사회 분위기에 대한 저항이자 새로운 부산을 염원하는 시민의 간절한 외침이다.
일본 오사카를 연고로 하는 한신 타이거즈가 1985년 재팬시리즈 재패 이후 17시즌 동안 바닥권을 헤매다 2003년 18년 만에 센트럴리그에서 우승했을 당시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 일대가 들썩거렸다. ‘반교진’(反 巨人·도쿄 연고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선봉장이었던 한신의 우승은 제2의 도시임에도 도쿄에 비해 경기 침체가 심각했던 오사카 시민의 소외감을 일거에 날려버린 쾌거였다. 경제 유발효과만도 3000억 엔(4조1000억 원)에 달했다고 하니 그 분출된 에너지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팬과 구단의 지향점은 우승으로 분명하다. 남은 것은 결과를 내는 것이다. 새로 부임한 양상문 감독과 선수들도 최선을 다해 줄 것으로 믿는다. 구단과 프론트도 팀의 성적을 최우선으로 삼고 쓸데없는 내부 갈등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롯데의 팬들도 성급한 비판보다는 성숙한 팬덤을 보여줄 때다. 기다림의 야구는 감독만 하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부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