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6일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수식이 북측 지역인 개성 판문역에서 열린다. 남북 관계는 참 요지경이다. 변화가 많은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크게 바뀐 것도 없다. 그러나 다른 눈으로 보면 실로 엄청난 변화가 있다. 많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애매모호하고 이상야릇한 것, 이것이 남북 관계이다. 이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남북 관계가 롤러코스터처럼 양극단을 오간 역사는 꽤 오래됐다. 1970년대만 봐도 그렇다. 1972년 7월 4일 온 겨레는 환호했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로 상징되는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박성철 북한 부수상이 남북을 오가며 최고지도자를 만나 이룬 성과였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도 진행됐다. 하지만 좋은 분위기는 1년여를 가지 못했다. 이듬해인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에서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나면서 남북은 다시 얼어붙었다. 1976년 8월 18일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미루나무 제거 작전을 하던 미군 2명이 북한군에 의해 도끼로 사살되는 8·18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최근 상황은 과거와는 분명 다르다. 우선 접촉면이 매우 넓어졌다. 남북공동조사단은 지난달 30일부터 18일간 신의주와 두만강까지 총 2600km에 걸쳐 철도 공동조사를 진행했다.
산림협력도 병행하고 있다. 남북산림협력 차원에서 북한을 찾은 남측현장방문단은 지난 11~13일 북한 산림현장을 돌아봤다.
보건, 체육, 군사 분야에서도 남북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작더라도 실질적인 성과들이 하부 단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흐름이다. 물론 이것은 여차하면 깨질 수 있는 불안하고 한계가 있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군사 분야이다. 지난 9월 19일 남북은 서로에 대한 일체의 적대적 행위를 중단한다는 남북교류협력의 군사적 보장에 합의했다. GP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남북공동 유해 발굴을 위한 지뢰 제거 및 도로 건설 등을 실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GP를 시범 철수했고 상호 검증까지 마쳤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도 막판 고비를 넘고 있다. 남북공동 유해 발굴 및 도로 건설은 겨울이 끝나면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내년에 주목될 곳이 있다. 중부전선 화살머리고지이다. 남북은 내년 초 공동으로 이 지역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벌인다. 필자는 최근 이곳을 방문했다. 화살머리고지 GP 망루에 올라 보니 오른쪽에 백마고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9일 동안 12번의 공방전이 벌어졌던 6·25전쟁 최대 격전지다. 이곳은 철원평야와 서울로 이어지는 핵심 보급로였다. 앞쪽을 보니 유해를 발굴할 지역을 표시해 놓은 노란색 띠줄이 보였다. 화살머리고지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일대. 백마고지 남서쪽 3km 지점에 화살 머리처럼 남쪽으로 돌출된 해발 281m 고지를 일컫는다. 6·25전쟁 당시 국군 미군 프랑스군과 북한군 중공군이 뒤엉켜 뺏고 빼앗기는 격전을 벌였다. 남북은 현재까지 이 지역에서 지뢰 19발과 폭발물 187발을 제거했다.
도로 개설 현장은 남북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우리 측은 소수 인원이 중장비로 도로를 만들었다. 작은 흰색 돌을 깔아 놓아서인지 멀리서 봐도 눈에 띄었다. 반면 북측 도로는 많은 군인이 작업 도구를 사용해 길을 냈다. 흙길이었고 양측 옆에 각을 잡아 턱을 만들었다. 철책은 없었지만 남북의 경계는 도로에서도 확연히 갈렸다. 흰색 도로와 황토색 도로는 남북이 처해 있는 경제적인 상황이 어떠한지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와 달리 북측 병사 대부분은 장교이다. 병사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또 작업을 하는 병력보다 그들을 감시하며 지켜보는 경계 병력이 더 많다. 이색적이다. 폐쇄 사회 북한의 현실이다.
이 겨울이 지나면 6·25전쟁 격전지였던 화살머리고지는 화해와 협력의 상징으로 거듭날 것이다. 죽음으로써 고지를 사수했던 우리의 선배들은 하늘에서나마 변화하는 남북 관계를 지켜보며 평화통일을 기원할 것이다. 화살머리고지의 봄이 핵 없는 한반도의 봄으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