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할 때면 누구나 ‘남다른 복록’의 주인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천복과 박복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오해가 깊다. 132㎝의 키에 31㎏의 체중으로 홀로 산 자야 언니가 죽었을 때 다들 박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야 ‘언니’로 불렸고 ‘우렁각시’로 살았다. 자야 언니를 아는 이들이 행한 눈물의 추도식은 그의 삶이 아름다웠다는 증거이다. 입으로만 떠들고 행세만 하려는 그 어떤 정치인보다 감동을 주며 산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선혈이 낭자하도록 맞아죽은 자야언니의 시신을 보고도 살인자의 피 묻은 증거물을 제거하도록 배려했다. 그래서 자야 언니의 처참한 주검은 악랄한 범죄자의 탐욕과 술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계시의 자리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액운이 묻을세라 잊기에 급급하다. 아니, 잊을 수밖에 없다. 충격적인 사건들은 매일 차고 넘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삶의 진실을 외면한 채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려 차별을 일삼고 있으니 복 있는 삶을 살 수가 없다.
병보석을 받은 재벌 회장이 간암 판정한 의사와 술 마시는 모습은 51채 이상의 집을 가진 1988명의 탐심에도 불을 지핀다. 재화로 특혜를 누리는 것이 ‘천복’이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과 특혜는 우울을 양산하고 경제적 환란을 가속화시킨다. 그런데도 자산을 불리는 데에만 혈안이 된 부자들은 가난한 자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미국의 경제가 파탄 상태였던 루스벨트 재임시절 뉴딜 정책의 가장 핵심적인 노력은 많이 가진 자의 기부와 증세에 집중되었다. 국가가 재화를 적절하게 분배할 수 있는 민도를 가져야만 환란은 극복된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의 독재 체제는 범죄자가 합당한 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정경유착을 통해 엄호했고, 세금을 제대로 쓴 적도 없었다. 노무현 정부 때 IMF환란 이후 너무 많아진 달러 때문에 외국에 부동산을 사도록 허용 했던 적이 있다. 그때 미국의 부동산 잡지 헤드라인에 걸린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한국에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오고 있다’.
한국 부자들은 증세라는 말만 들어도 호들갑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가진 자의 책무에는 무관심하면서 수입에 비해 조족지혈 수준인 세금에는 ‘나라의 참극’이라며 침소봉대한다. 이러니 삶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친구를 죽인 10대 아이들조차 변호사만 있으면 벌 받지 않는다며 큰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재력을 아는 그들은 변호사가 자신의 형량을 어떻게 조정해 줄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어떤 반성도 없이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 살인자에게 합당한 벌을 주지 않게 되면 반드시 또 다른 사람이 죽어야 한다. 삶의 질을 숙고하는 나라들에서 두 번의 종신형이나 300년의 형량을 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특혜 받는 범죄자가 너무나 많다. 오죽하면 아주대 이국종 교수도 세월호의 비극이 날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상황이라 말했을까.
근로자들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해 죽는 것은 위험한 사업장이 방치되도록 가진 자에게 특혜를 주었기 때문이다. 삶의 장에서 모든 이의 안위와 평안을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사지로 내몰고는 죽을 팔자라 죽었다고 분류하는 우리의 편견은 재고되어야 한다. 품위를 가장한 이기심이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가난했던 자야언니를 20대 남성이 살해한 것은 자야언니의 박복이 아니라, 인성이 바닥난 악질 살인자가 활보하는 나라에 산 죄뿐인 것이다. 가난은 하늘도 구제를 못 한다지만, 주거 빈곤 아동 94만 명의 상황을 국가가 좌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스웨덴이나 핀란드처럼 부자들의 소득에 대해 60% 이상을 세금으로 내게 해도 50채가 넘는 집을 2000명에 육박하는 이가 지고 있을까. 2채 이상 소유자도 200만 명을 넘어섰지만 집 없는 이는 인구의 절반에 이른다. 그들에게 ‘집’은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꿈을 앗아간 부자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넘쳐나게 가지고도 가난한 자를 벼랑으로 내모는 삶은 복 있는 삶이 아니다. ‘가질 자유’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생활 에너지가 지나치게 낭비되고 있다. 삶 자체가 아름다운 예술이 될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다. 약자에게서 빼앗은 재화를 ‘복’으로 분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최소한의 기본권을 갖추고 살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가진 것 없어 가난하게 살았어도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아온 자야 언니는 그 어떤 거인도 해내지 못한 나눔의 삶을 아름답게 실천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야 언니의 복된 삶은 기억되어야 하고, 그의 삶을 앗아간 살인자는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소설가·동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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