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으로 확인해야 믿는 버릇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영어 속담 ‘보아야 믿는다(Seeing is believing)’도 그래서 생겼을 터이다. 백 번 들어도 한 번 보느니만 못하다는 중국 한서(漢書)에 나오는 ‘백문불여일견’도 같은 맥락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시각 정보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크기는 사람마다 또는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100마이크로미터(㎛) 정도다. 과학자들은 1㎜를 1000개로 나눈 마이크로미터 단위를 사용한다. 100마이크로미터를 우리에게 친근한 밀리미터 단위로 바꾸면 0.1㎜가 된다. 30㎝ 자에 새겨진 눈금을 보면 가장 작은 눈금과 눈금 사이가 1㎜이다. 이것을 다시 10개로 나누었다고 했을 때, 그 가운데 한 개 길이다. 이 정도면 얼추 우리 머리카락 두께 정도다. 혹시나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잘 찾는 분들이 오해할까 해서 머리카락의 길이가 아니라 두께임을 새삼 다시 말해둔다.
100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크기의 물체나 생물을 맨눈으로 식별하기는 어렵다. 마이크로의 세계를 보려면 우리 눈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현미경이다. 멀리 있는 물체를 잘 보려면 망원경을 쓰듯 현미경으로는 작은 물체를 자세히 볼 수 있다.
현미경도 종류가 여럿이다. 크게 보면 광학현미경도 있고 전자현미경, 양자현미경도 있다.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광학현미경은 대체로 물체를 1000배까지 확대해 볼 수 있다. 전자현미경을 사용하면 보통 수백만 배까지 확대해볼 수 있다. 전자현미경은 가속된 전자빔을 이용하여 0.2나노미터(nm) 물체까지 식별이 가능하다. 나노미터는 마이크로미터를 또다시 1000개로 나눈 한 개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다. 얼추 머리카락 두께의 10만분의 1이다. 양자현미경은 양자의 파동적 성질을 이용하며, 배율이 60만 배에 달한다. 이런 장비를 사용하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것도 볼 수 있다.
바닷물을 유리컵에 담아보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듯 투명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바닷물 안에는 무수한 생명체가 살고 있다. 바닷물 한 방울 속에는 아주 작은 플랑크톤이 수십에서 수백 만 개체가 있다. 물에 떠서 살며 우리 눈에 잘 안 보이는 작은 생물을 플랑크톤이라 한다. 플랑크톤에는 박테리아나 식물, 동물 종류가 다 있다. 이들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면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 식물플랑크톤 가운데 규조류와 와편모조류는 광학현미경으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이들의 크기는 고작 수십에서 수백 마이크로미터정도이다.
규조류를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껍데기에 새겨진 무늬가 그야말로 어떤 유명 조각가의 손길이 간 작품보다 더 경이롭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식물플랑크톤에 그토록 아름답고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 있다니 놀라울 일이다. 모양 또한 다양하다. 둥그런 원판처럼 생긴 것도 있고, 길쭉한 막대기처럼 생긴 것도 있고, 삼각형 또는 공 모양으로 생긴 종류도 있다. 동물플랑크톤은 종류도 더 많고 형태도 다양하다. 동물플랑크톤인 요각류 가운데는 보석 오팔보다도 더 아름다운 광채를 띠는 종류가 있다.
바닷물 속에 사는 이런 작은 생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과 국립해양박물관은 부산 영도구 해양클러스터 안에 이웃해 자리잡고 있다. 지리적인 접근성을 최대한 살려 실질적인 협력을 모색하기 위한 모임을 활발히 갖게 되었다. 그 첫 번째 결실이 이루어졌다. 두 기관이 함께 맨눈으로 보기 힘든 바다생물을 대상으로 해양 마이크로 세계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시켜 전시회를 열었다. 과학과 예술이 만나 과학 문화의 꽃을 피운 것이다. 전시회 ‘오션 사이언스 아트’는 지난달 13일 시작하여 올해 2월 10일까지 국립해양박물관 4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과학의 힘이 없었다면 볼 수 없었던 바닷속 생물, 우리 시력의 한계 때문에 접할 수 없었던 해양 마이크로의 세계를 경험해보자. 기해년 새해에는 또 다른 바다의 신비가 펼쳐질 예정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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