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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낯설게 하기 /조갑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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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1-02 19:32:53
  •  |  본지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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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힌 고색창연한 연하장 구절은 재미없다. 그래서 익숙했던 것들과 결별하는 ‘나 자신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고 싶어 이렇게 연하장을 보냈다. ‘2019년 기해년 첫 아침을 멋지게 시작(詩作)합시다. 그리고 열광하는 것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날들이기를 빌겠습니다’.

“어, 이게 뭐지. 야, 그것 참!” 대개 낯섦과 맞닥뜨릴 때 찾아오는 반응이다. 나의 바람대로 작은 감동과 호기심이 전해진 듯싶다.

‘올해 시를 쓰기로 했느냐’는 문자도 오고, 새해 안부를 묻는 전화도 왔다. “올해도 재밌는 연하장 잘 읽었다. 별일 없제?” 순간 엉뚱함이 발동한다. 나는 조금 뜸을 들이다 천천히 “별일 있다”고 답한다. “와, 무슨 일이고. 몸이 안 좋나”에 “친구야, 사는 게 별일 아니가. 이번에 보낸 연하장도 별일이지”로 대화가 이어진다.

우린 대부분 습관적으로 “그래, 별일 없다”고 말한다. 별일이 있어야 한다. 별일이란 ‘변화가 있는 삶, 어제와 차이를 만드는 재밌는 삶에서 터져 나오는 일’이다. 삶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별일 없는 삶은 무미건조하다. 내가 주체가 되어 내 삶의 풍경을 재미있게 바꿔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의 문학이론가 빅토르 시클롭스키는 이것을 ‘낯설게 하기(Defamilarization)’라 표현하면서 인간의 지각은 일상의 친숙한 것들보다 낯선 것에서 더 미학적 가치를 느낀다고 했다.

나는 평소 이런저런 소식을 전할 때도 직접 만든 엽서를 이용한다. 내가 꿈꾸는 삶이 아닌 남들이 부추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고, 방탄소년단의 멤버 제이홉이 신들린 듯 추는 삼고무(三鼓舞) 한번 보라고. 그런데 그 엽서의 앞면에 ‘축의 시대’라는 책을 오른손에 들고 웃는 나의 사진을 넣고, ‘삶에 질문을 던지고 싶어 사고(思考)뭉치가 된 사나이가 온다. 브람스, 아인슈타인, 네루다, 박수근, 유발 하라리가 멘토인 Change Maker 조갑룡. 그는 이렇게 외친다. READ and the Force is with you’라는 문구를 넣어 나만의 엽서를 제작했다.

이 엽서를 받아본 지인들은 SNS나 전화로 “야! 그거 기발한데”와 같은 심심찮은 반응을 보내온다.

평범한 엽서를 낯설게 만들어 일상성 속에 매몰돼 있는 이웃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셈이다. 내 삶의 맥락을 조금 다르게 편집해 나부터, 그리고 이웃에게 새로운 사유(思惟)거리와 재미를 주었다는 생각이다.

지난달 초 아들 녀석이 명함을 새로 만들었다고 자랑을 했다. 승진도 안 했는데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카톡으로 보내드릴 테니 일단 보고 얘기하자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구상하고 있는 명함이었다. 이름을 기준으로 밑에는 직책을 쓰고 앞에는 ‘思考多發’ ‘사고다발’ ‘Active Brainstorming’이라는 단어를 세 줄에 걸쳐 넣었다. 새해 들어 이름 앞에 ‘마중물’이라는 나의 꿈을 쓰고 이름 밑에 직함을 넣어 새 명함을 만들려고 했는데. 내가 한 발 늦었다. 아들 녀석이 내가 만든 엽서에 담긴 의도를 슬쩍했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했던가.

나는 10여 년 전부터 명함의 앞면에는 경남여고 교장시절 학예전에서 ‘색소폰 부는 장면’을, 영어로 된 뒷면에는 한국과학영재학교 교감으로 근무하면서 아이들과 함께했던 그룹에서 ‘기타 연주하는 사진’을 넣어 사용하고 있다.

내가 어느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고, 연락하려면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하는지 정도로 나를 나타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가치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를 말하는 게 나의 정체성을 알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나의 명함을 받고는 한 번 더 쳐다본다. ‘별일’에 대한 공감의 표시이다.

새해 첫 아침을 멋지게 詩作하자고 했다.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틀을 깨고 익숙한 것들과 결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 시 필사도 좋을 것이다. 남다른 감성과 상상력으로 낯설게 하기를 잘하는 시인을 따라 해보자는 것이다.
올봄에는 꽃샘바람이 아닌 詩샘 바람이 불어오면 좋겠다.

부산시영재교육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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