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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의 미술여행] 미술관을 지키는 강아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1-08 18:58:55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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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도시 빌바오에 가면 7만 송이 꽃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일반 가정집 강아지는 아니고 유명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이다. 키가 12m가 넘는 이 초대형 강아지는 우리 시대 가장 성공한 미술가로 손꼽히는 제프 쿤스의 작품으로 빌바오의 랜드마크 같은 존재다. 1997년 개관 때부터 줄곧 미술관 앞에 있다 보니 2000억 원이 투자된 미술관을 ‘세상에서 가장 비싼 개집’으로 전락시키기도 하지만, 사실 이 강아지는 위기에 처한 주인을 구한 충견이자 미술관의 충직한 지킴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앞의 제프 쿤스의 1992년작 ‘강아지’.
1980년대 말 뉴욕에서 작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제프 쿤스는 나중에 부인이 된 일로나 스탈러를 모델로 한 ‘메이드 인 헤븐’ 시리즈를 발표해 파문을 일으켰다. 치치올리나란 이름으로 더 알려진 스탈러는 포르노 배우 출신으로 이탈리아 최초로 국회의원까지 지낸 명사였다. 쿤스 부부가 등장하는 이 시리즈는 너무도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담고 있어 대중적 비난이 쇄도했다. 컬렉터들의 외면으로 결국 쿤스는 파산 상태까지 이르렀고, 스탈러는 아들을 데리고 쿤스 곁을 떠나버렸다.

모든 불행은 함께 오는 걸까. 작가 인생에도 큰 위기가 찾아왔다. 1992년 독일 카셀에서 열린 세계적 권위의 현대미술전시 ‘도쿠멘타’에 초대된 44명의 미국작가 명단에 쿤스 이름은 없었다. 이 모든 불명예와 위기를 한 번에 극복할 묘책으로 쿤스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 강아지였다. 꽃이나 강아지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주제이고 18세기 황제의 정원을 장식한 동물 모양의 거대한 정원수인 토피어리 방식이면 시선을 끌기 충분할 것 같았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 강아지는 의도적으로 ‘도쿠멘타’가 열리는 기간에 맞춰 개최 장소인 카셀 인근 아롤젠 궁전 앞에 설치됐고, 당시 카셀에 초대된 189명 작가의 작품보다 더 큰 주목을 받으며 쿤스의 재기를 도왔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이 강아지는 세계 순회 전시 후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에 맞춰 미술관 앞에 영구 설치하기로 결정됐다. 그런데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정식 개관 며칠 전, 작품 설치 인부로 가장한 테러리스트 3인이 12개의 무선 조종 수류탄을 꽃 화분에 넣어 반입하려다 적발된 것이다. 다행히 사전 발각되어 큰 비극은 없었지만 테러 진압과정에서 스페인 경찰 한 명이 희생됐다. 하마터면 미술관을 통째로 날린 ‘트로이의 강아지’가 될 뻔했지만 결과적으로 쿤스의 강아지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미술관과 도시를 지킨 영웅이자 빌바오의 안전과 정의의 상징이 됐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은 몰락해 가던 회색빛 공업도시를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문화관광 도시로 탈바꿈시킨 신화의 주인공이다. 한때 위기에 처한 쿤스를 구했던 강아지는 이제 이 신화적 미술관을 지키는 든든한 지킴이자 빌바오 시민 모두의 충견으로 오늘도 성실히 임무를 수행 중이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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