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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기분으로 세상보기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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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1-08 19:11:0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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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전라도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차별을 받았다고 그럽니까”라는 말을 들을 때, 또는 “한국에서 여성이 뭐 억울한 게 있다는 겁니까. 남자들이 역차별받는 세상 아닙니까” 같은 항변을 들을 때 말문이 막힌다. 내 인식 속에 호남인, 여성,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성소수자들에 대한 박해와 차별은 너무나 명백한 문제여서 꼼꼼히 따져본 일조차 없다. 아울러 그 명백한 사실에 대해 반기를 드는 자들은 일부 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암약하는 부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내 나름의 그 ‘명백한 문제’에 대해서도 곰곰이 숙고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이 달라졌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 사실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댓글의 욕 세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쏟아지는 욕설, 비난, 혐오, 분노의 시끄러운 소리들을 짐짓 무시하는 척 하지만 꽤나 어리둥절한 기분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 그처럼 생각이 다른 걸까. 도대체 왜?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말을 토해내는 기회도, 반응을 접하는 일도 참 많아졌다. 나의 경우 지상파에서 점점 밀려나 종편에서 몇 년간 활동하다 이제는 유튜브나 팟캐스트에 주로 출연한다. 말하는 자나 댓글로 반응을 올리는 자들이나 참으로 날것처럼 생생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거칠고 생생함은 좋은 면이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방송 출연자들의 발언과 태도가 편집을 통해 얼마나 가공되는지. 반면 인터넷 매체에서 벌이는 토론은 거의 멱살잡이 육박전 수준인데 그런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다. 다만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반응할까 하는 궁금증이 깊다.

내게 욕 세례를 퍼붓는 사람들 중 20대 젊은 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을 하는 편이다. 30년씩이나 차이 나기에 생각이 같은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남자애’들이 여성을 향해 쏟아내는 분노를 듣노라면 이들은 가부장 사회를 경험하지 못했구나, 한국의 여성이 겪어야 하는 유리천장을 느낄 수조차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정의로움에 대한 염증, 평등에 따른 박탈감으로 비화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반면 이해 불가의 대상이 바로 나와 같은 시절을 겪어온 이른바 나이 든 보수층이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그리워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박근혜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명백한 퇴행으로 보이지만 나이가 많아져 그러려니 한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독재건 뭐건 그래도 죽어라 일해서 성과를 냈고 오순도순 다정한 인간관계 속에 살았으니 어찌 그립지 않은가. 하지만 곧장 다음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가.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가 목표였던 시절처럼 계속 살아가자고, 계속해서 후진국 사회에서 살자고.

이런 생각의 단층을 어떻게 해야 좁힐 수 있을까. 댓글창의 숱한 욕설을 읽고 있노라면 보수 진보 간 편 가르기가 실상은 정서적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혐의가 든다. 가령 내 인식 속에 문재인 정부는 박정희, 김대중의 시장정책을 이어가는 명백한 보수정권이다. 북한관계 역시 냉전, 탈냉전의 국제환경에 부응해 온 정도일 뿐이지 7·4 남북성명을 만들어낸 박정희와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과 전면적인 교류를 도모하는 문재인의 정책이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굳이 차이를 두자면 박정희는 후진국형 독재로 통치한 과거 기득권이고 문재인은 아직 기득권화 되지 않은 현재 권력일 따름이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까닭은 상대적으로 덜 부패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공화당 민정당 새누리당 정권과 민주당 정권을 매우 다른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 점은 민주당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여서 문재인이나 박근혜나 정책적으로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펼펄 뛴다. 아서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은 프랑스의 미테랑이 집권했을 때만큼도 진보적이지 않다.
진보 보수의 차이가 정서 차원에서 빚어진다면 참 답이 없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또는 대한애국당을 ‘나의 당’이라고 여기거나 민주당을 그렇게 여긴다면 정책의 찬반이 무슨 소용이랴. 그래서 해보는 생각인즉 의견 차이가 아니라 기분 차이의 문제는 아예 접근이 달라야 하지 않나 싶다. 지역차별, 성차별 문제 역시 정서차원에서는 정반대 생각도 가능할 테니까.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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