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아주 오랜 세월 부산의 아침을 깨우던 소리다. 어릴 때 나는 그 소리가 싫었다. 아버지의 해장을 위해 냄비를 들고 나가는 일이 그렇게 귀찮을 수 없었다. 국은 더 싫었다. 허여멀건한 색깔부터 기분 나빴다. 비릿하고 밍밍한 맛은 무슨 조미료를 희석해 놓은 것 같았다. 콩알만 하고 씹을 것도 없는 건더기도 마뜩잖았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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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사상구 삼락동 ‘할매재첩국’의 재첩정식. |
재첩국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은 낙동강에서 더 이상 재첩을 채취할 수 없고, 따라서 ‘재첩국 아지매’도 사라진 지 한참 지난 뒤였다. 맛을 이해하는 것은 일종의 발견이다. 알 듯 말 듯한 과정이 몇 번 되풀이 되다가 느닷없이 ‘그래, 이 맛이구나!’하고 발견하게 된다. 알면 빠져들고,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렵다.
낙동강 하류와 접한 삼락동 감전동 하단동 일대는 습지라 농사 지을 땅이 마땅찮았다. 강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부녀자들은 강바닥에 지천으로 널린 재첩으로 국을 끓여 파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렇게 재첩국을 팔러 다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사상구 삼락동에서 재첩국 장사를 시작했다. 상호도 없이 평상 하나 놓고 시작한 장사가 어느덧 40년을 훌쩍 넘겼다. 아지매로 시작해 할매가 되어 비로소 상호를 얻어 ‘할매재첩국’이 되었다. 시어머니의 장사를 도왔던 젊은 며느리가 지금은 할매가 되었다. 얼마 전 그 할매와 겸상을 했다.
“오늘 재첩국 맛이 유난히 좋네예.”
“안 그래도 오늘은 조개 맛이 쪼깨이 나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 어느 음식평론가가 이처럼 직설적으로 분석할 것이며, 세상 어느 시인이 이처럼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작은 몸뚱이로 바닷물과 강물을 삼키며 진짜 조개가 되고 싶었던 재첩의 아우성. 그 아우성이 토해낸 가녀린 맛을 “조개 맛이 쪼깨이 나네”라고 말할 수 있는 대담함은 재첩을 수십 년 동안 끓여본 장인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비단 주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집에는 수십 년 단골이 부지기수다. 심지어는 매일 오는 단골도 적지 않다. 인이 박히도록 재첩국을 먹어온 그들의 감각 또한 주인 못지않다. 하지만 좀처럼 국맛을 칭찬을 하는 법이 없다. 그저 발길을 끊지 않는 것으로 대신한다.
낙동강에서 재첩이 사라진 지 30여 년이 흘렀어도 재첩국의 명성이 여전한 것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억하면 되고, 전통은 복원하면 되고, 식재료는 구해오면 된다. 하지만 사람은 대체 불가능하다. 음식의 전승은 사람의 기억과 감각이 이어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음식의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맛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