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면에 내가 국악인이며 피리연주자라고 소개하면 의외로 많은 질문을 받는다. 보통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 속 국악은 가까이서 접해본 적 없는 음악, 그래서 친숙하지 않은 음악, 그리 깊게 생각해본 적 없는 음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궁금증이 발동한 질문자에게 때론 고마운 생각도 든다. 이를 계기로 우리 음악을 좀 더 알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기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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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국악원 영산회상 연주 모습. 국립국악원 제공 |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수십 명이 연주한 거문고가 고구려 재상 왕산악이 중국의 칠현금을 개량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악기라면 다시 보이지 않겠는가. 6세기 가야국의 가실왕이 만들었다는 가야금, 통일신라시대 만파식적의 설화에 등장하는 대금, 고구려 때 서역에서 실크로드를 거쳐 한반도에 유입된 피리. 이 모든 악기가 현재 궁중음악부터 민속음악까지 연주되고 있다.
그렇다면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떻게 지금까지 전승돼 왔을까. 서양의 중세시대 음악은 인간의 목소리를 최고로 여겨 무반주 합창곡 ‘아카펠라’가 성행한 반면 우리는 궁중의 의식음악에 기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이런 연유로 신라 땐 ‘음성서(音聲署)’, 고려 땐 ‘대악서(大樂署)’, 조선 시대에는 ‘장악원(掌樂院)’이라는 음악교육기관이 있었다. ‘경국대전’에는 장악원 소속 음악인이 1000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전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시련을 맞게 된다. 1910년 궁중이 폐쇄되면서 그 많던 음악인의 수도 몇십 명으로 줄어 단절 위기를 맞았지만 1925년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라는 이름으로 개칭돼 궁중음악에 관한 다양한 보존 작업이 이뤄져 명맥이 이어졌다.
우리 음악은 6·25전쟁으로 또 한 번 위기를 맞지만 수많은 예인의 노력으로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국립국악원이 설립돼 현재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국립기관으로서 전통음악의 명맥을 잇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 양성소와 국악예술학교가 개교했고, 1959년 서울대 음악대학에 국악과가 신설된 후 전국의 주요대학에 국악과가 신설되면서 국악 실기는 물론 학문적 이론을 겸비한 체계적인 국악 교육이 확산됐다.
국악과에서는 크게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성악 이론 작곡 파트가 있으며, 세부전공으로 피리 대금 해금 가야금 거문고 아쟁 판소리 민요 정가 이론 작곡으로 나눠 배운다.
대입을 위해 어릴 때부터 악기를 배우고 열심히 익히는 것은 서양악기를 전공하는 학생과 다르지 않다. 국악도 입시제도에 맞춰진 엘리트 음악교육으로 전공자 간의 치열한 경쟁이 만연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국악을 전공자만의 리그가 아니라 일반인을 상대로 선입견과 즐겁게 마주하고 좁혀갈 수 있는 생활 국악교육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소리연구회 소리숲 대표·음악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