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사들이 쓴 ‘성공학 개론’ 같은 책이나 강연 내용을 들춰 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생각이나 습관을 바꿔라,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 봐라 따위이다. 이렇듯 각종 처세술이나 성공학이 대중에게 전하는 메시지에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습관이나 생각의 전환을 주문하는 말들이 들어 있다. 이들의 메시지에 어느 정도 진실함과 개연성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머리로만 수긍할 뿐 받아들이는 쪽에서 직접 실천으로 옮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이 취하고 싶어 하거나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실천 항목들에만 관심을 쏟기 때문이다.

선택적 삶은 우리 인생의 여러 갈림길에서 유용한 지혜를 주는 ‘처세’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을 자신 삶의 모델로 삼곤 하지만 굳이 온전한 롤 모델의 삶을 좇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알게 모르게 지닌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통과제의를 그럭저럭 무사히 지나는 중인 셈이다.

그런데 늘 이맘때면 많은 사람이 신년운수나 토정비결 같은, 한 해의 삶을 미리 들여다보려는 비과학적인 제의에 몰두한다. 이들도 사실은 그런 행위가 겸연쩍다든지, 혹은 딱히 내세울 만하거나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연례행사처럼 점괘를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이를 탓하는 게 아니다. 그게 단순한 호기심이든, 정말로 믿음의 발로든 관계없이 현대인들이라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을 수야 있겠는가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다. 오히려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기에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이 마치 시소게임처럼 불쑥 우리를 사로잡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명절이나 제사, 또는 성묘 때 절을 하면서 복을 비는 행위 또한 아주 오래된 생활문화다. 복이 인간에게 정신적인 만족과 생활의 윤택함을 준다는 데 부정할 사람도 없으며, 다다익선이라는 말처럼 많을수록 좋은 삶의 요소인 것만큼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보름달을 향해서든, 새해 일출을 바라보면서든, 그리고 죽은 이들을 회상하게 하는 봉분이나 제사상을 마주하면서든 마음속으로 은밀하게 복을 간구하는 일이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외부의 대상을 향해 복을 바라는 행위가 숨기는 커다란 비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이나 신성하다고 느끼는 어떤 존재와 기복행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복을 던져 주는 주체로서 죽은 이와 성물(聖物)이 먼저 놓이고 우리가 이들에게 기도를 함으로써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저 건너편에 있거나 특별한 표식을 나타내기에 ‘기복(祈福)’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서 이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문화가 발달하고 정교해질수록 최초의 진실은 지워지거나 변형되는 듯하다. 사실주의의 화풍이 지배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입체주의나 초현실주의의 화풍이 득세를 한 사실은 문예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떨어져 나간 조각’들은 신화와 전설에서도 발견된다. 오늘날의 눈으로 볼 때 신화가 기괴하고 아귀가 맞지 않는 이야기로 가득 찬 까닭도 어떤 변형을 가해 진실을 감추려 했기 때문이다.

대개 집단이나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오랜 전통을 두고 행하는 의식 속에는 나름의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서이다. 기복행위도 마찬가지다. 기원에서 너무 멀어져 버려 무의식적인 습성이 되었지만, 우리는 마치 쌍둥이들처럼 집단적으로 죽은 이들 앞에 절을 하고 복을 바란다. 미신이든 아니든 우리가 일체화된 의례와 마음가짐으로 ‘신성한’ 대상 앞에 정렬하는 순간이 기적이 일어나는 때이다. 이 기적은 복을 비는 순간 그 복을 받게 되었다는 뜻의 기적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이 엇비슷한 색상의 의복과 엇비슷한 몸짓으로, 더군다나 엇비슷한 생각으로 죽음 앞에 불려나왔다는 의미의 기적이다. 이런 뜻에서 우리 모두는 한 통속이요, 집단적인 속임수를 행하는 무리이며, 오로지 하나의 문화적 의례에서만 대동단결하는 원수-형제들인 셈이다.

우리는 왜 석양이 질 때쯤이면 쓸쓸해하고 새해에 동이 틀 무렵에서야 복을 비는가. 왜 임종을 앞둔 사람 앞에서는 숙연해하고 훗날 그이의 제사를 지내면서야 짐짓 경건한 척 복을 비는가. 그 내막이야 어찌됐건 사람과 삶에 커다란 빚을 졌기 때문에 그것들이 사라진 다음에야 ‘신성함’이라는 외관을 덧씌워 절을 하고 운수를 바라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걸려 넘어진 돌부리(스캔들)를 의식하지 않고 깊이 간직한 사람들이야말로 ‘복발’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그 사람의 주머니에 스캔들을 빼고 ‘염치’를 넣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말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