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행복한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 현재 부산시청 건물 정면에 붙은 시정 슬로건이다. 이는 오거돈 부산시장이 재임 기간 중 가장 주안점을 두고 추진하겠다는 시민과의 약속이다. 솔직히 말해 이 구호는 부산시민에게 기시감이 아주 강해 그리 새로울 게 없다. 고 안상영 시장부터 허남식 서병수 부산시장의 대표적 선거 공약이었고, 범위를 좀 더 확장하면 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단골 ‘정치’ 슬로건이기도 하다.
지난 20여 년간 우려 먹을 대로 우려 먹어 전혀 새로울 게 없을 것 같았던 이 슬로건이 지난해 6·13지방선거에서 오 시장에겐 제법 먹혔던 것 같다. 알려진 대로 오 시장은 해양수산부 장관, 한국해양대 총장, 대한민국해양연맹 총재 등 바다와 관련한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부산시민은 오 시장의 이러한 경력 때문에 그가 하면 분명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그에게 표를 던졌으리라. 지역 해양수산 관련 업계·학계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해양수산 전공자는 아니더라도 전문 행정관료로서 해양수산 관련 기관 및 단체에서 다양한 업무를 접해 그에 대한 기대는 사뭇 컸다.
하지만 민선 7기가 출범한 지 8개월째 접어드는 지금까지 주위에서 기대했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 시장은 동북아 해양수도에 대한 개념을 바다를 낀 도시의 전반적인 성장과 개발 방향으로 설정했다. 시청 앞의 슬로건과는 괴리감이 있어 보인다. 해양수산업을 기반으로 도시 경쟁력을 키워나간다는 중장기적 도시비전과 전략이 보이지 않아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평까지 나온다.
싱가포르 런던 등이 ‘해양수도’를 표방하며 도시비전을 단기 5년, 중기 10년, 장기 20년식으로 수립하고 있으나 부산의 도시비전은 도시계획이나 도로, 대규모 건축물 등 하드웨어 일색의 건설방향으로만 계획을 내놓고 있다. 바다, 해안선, 부산항, 해양수산 관련산업 등 해양을 모티브로 하는 실천적 비전과 계획도 현재까지 없다. 유일하게 수립 중인 해양산업 육성계획에는 해양금융, 해사법원, 해운거래소, 스마트자동화항만 등 학계 등에서 내놓는 장밋빛 청사진만 들어 있다.
최근 부산시의회 최도석 의원은 지역 해양관련기관 전문가 300명을 대상으로 ‘부산의 해양수도 잠재력 분석과 추진전략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내놨다. 전문가들은 부산이 해양수도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 83%가 긍정적으로 답했지만, 부산이 지금까지 해양수도가 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해양관련 기업 본사의 지역 외면 ▷제도적 중추관리기능의 중앙집중 ▷지방도시의 해양관련 제도적 권한 부재 ▷부산시의 육상중심 정책 등으로 답했다. 부산이 외형적으로 국내 해양산업 발전을 선도하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지만 기업 본사가 없어 부산항의 경제적 편익이 수도권으로 역류되고, 지자체의 제도적 권한이 없어 해양수도 구현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분권위에 따르면 우리나라 행정사무는 2013년 기준 4만6005개다. 국가 사무의 지방 이양은 2000~2012년 13년간만 진행됐고, 이양 건수는 3101건이다. 이 중 해양 자치분권 분야의 이양 건수는 122건에 불과했다. 이마저 지역경제에 중요한 항만물류, 해양 관광 및 개발 분야에선 전무하다.
이로 인해 부산시가 글로벌 해양도시에 흔한 크루즈선이나 유람선을 띄우는 데도 해수부 등 중앙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고 선용품, 선박급유, 항만하역, 선박수리업체 등을 지원하려 해도 근거법인 항만운송사업법에 막혀 불가능하다. 해양레저 관련 유일한 법규인 수상레저안전법은 안전만 너무 강조한 나머지 레저활동을 제약하는 ‘하지마라법’으로 방치돼 있다.
오 시장은 지난 설 연휴기간 2025엑스포 개최지인 일본 오사카와 인근 고베를 둘러봤다. 오사카에서 독특한 대중교통 수상버스인 ‘아쿠아라이너’를 탄 후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것은 아닌지’ ‘비가 올 때 위험하지 않은지’ 등을 관계자에게 물었다고 한다. 해양수도 부산을 지향하는 오 시장은 이때 이런 생각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부산에도 이런 수상버스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허가권자인 부산해양청과 부산해경을 설득해야겠네. 이참에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는 업무를 강화해야겠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 시장이 해양수도로 가는 밑바탕인 국가 사무의 지방 이양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여전히 내지 않고 있는 데는 해수부 장관의 사고가 아직 박혀 있는 게 아니냐고. 이건 해수부, 이건 부산해양청, 이건 항만공사, 이건 부산시 업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이제 역으로 적(?)의 빈틈을 노려 국가 사무의 지방 이양을 위한 논리개발에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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