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 외교관들이 협상 과정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외교 분야를 넘어 사회의 전 영역에서 인용되고 있다. 필자는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듣는 순간 심정적, 정서적으로 공감을 느꼈던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만일 이 말을 20대나 30대에 들었다면 과연 이 정도의 공감을 느꼈을까 반문해 보았다. 처음 접했을 때의 참신함(지금은 진부한 표현이 되었지만) 등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구체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 말이 던지는 의미를 계속 곱씹게 되고, 그럴수록 이 표현이 중언부언하지 않는 간결함을 통해 정곡을 찌른다는 생각이 들어 감탄하게 되는 수준의 공감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디테일의 어려움과 중요성은 숱한 경험과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디테일이 허술하면 공허하다. 정치인의 공약, 언론인의 보도, 법률가의 주장이나 판단 등 모든 것이 그러하다. 미사여구를 아무리 많이 사용하고, 아무리 강한 구호를 외쳐도 디테일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신뢰가 가지 않는다. 검증도 가능하다. 즉, 어떤 의견이나 주장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는 디테일을 보면 된다. 디테일이 허술하거나 틀렸다면 신뢰할 수 없다. 디테일이 억지스러우면 신뢰할 수 없다. 디테일이 약하다는 것은 내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의견이나 주장의 수준을 보려면 디테일을 살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선거공약이나 신문기사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마나한 말이다. 그 공약이나 기사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 현실에 대한 충실한 분석과 진단, 공교육이 무너진 원인, 사교육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이해, 다른 나라와의 비교,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실현 방법 제시, 그 방법의 현실성 검토, 필요한 예산의 확보 방안, 또 다른 부작용 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 등 숱한 디테일이 제시돼야 한다.
최근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제1심 법원의 판결이 화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법원의 판결이나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연일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그런 류의 대서특필은 어쩌다 있는 일 정도가 되어야 한다. 누가 구속되고, 누가 유죄 또는 무죄판결을 받고 하는 일들이 거의 매일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각설하고, 김 지사에 대한 판결을 둘러싼 정치권의 주장을 보자. 국제신문은 지난 1일 자 11면 등을 통해 정치권의 반응을 소개했다. 정치권의 반응은 진영에 따라 극과 극이었다. ‘사법 농단 세력의 반격’이라는 주장과 ‘법정구속은 사필귀정’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공통점도 있었다. 양측 주장의 디테일이 부실하다는 점이다.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 그에 이른 과정, 사실인정을 토대로 한 법리적 판단에 대한 충실한 분석은 거의 없었다. 판결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판결 내용, 즉 사실인정, 법리판단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이를 비판하는 주장은 드물었다. 진영 사이의 프레임 전쟁만 난무했다. 디테일이 부실한 주장은 진영을 초월한 보편적 신뢰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정치권의 반응을 소개한 언론보도를 접한 독자로서 필자는 대립되는 주장 중 그 어느 것도 쉽게 신뢰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산업은 고도화되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첨예한 이해관계의 대립과 갈등은 일상화됐다. 무수한 구호가 쏟아지고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주장이나 의견은 천차만별이다. 매일 온갖 보도가 신문 방송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면 정치인의 주장을 접하는 유권자, 언론의 보도를 대하는 독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제안을 해본다. 디테일을 살피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법무법인 청률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