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다 문득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게 되면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 특히 그날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을 듣게 되면 짜릿한 계절의 감각마저 느끼게 된다. “아, 벌써 봄인가!” 하고 말이다. 아직도 먼 산에 흰 눈이 하얗게 덮여 있고 나뭇가지에 막 돋아난 새싹들은 추위에 움츠리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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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에서 뉴질랜드 출신 혼혈 소프라노 ‘케슬린 베틀’이 노래하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당시 실황 앨범 표지. |
‘앞 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꺼나’로 시작되는 송길자 시, 임긍수 곡에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르는 ‘강 건너 봄이 오면’이 울려 퍼질 요즘이면 한 걸음 다가선 봄의 향기가 코끝에 성큼 와 닿는다. 이때쯤이면 자연히 두꺼운 외투를 몸에 걸치는 것이 어색해지고 그동안 즐겨 들었던 음반도 겨울에서 봄 주제로 자리바꿈을 하게 된다. 한동안 잊혔던 친구를 다시 반기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 새로운 음반들이 다가올 봄의 향기를 가슴속에 불어넣기 시작할 때쯤이면 새 학기를 맞던 학창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노란 프리지아꽃을 한 움큼 사다가 책상 위 꽃병에 꽂아놓고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에 흠뻑 젖던 젊은 날의 추억 말이다. 그 당시는 요즘과 같이 좋은 음질의 음반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스테레오 녹음이 아닌 모노로 녹음된 소프라노 ‘릴리폰스’의 노래에 심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당시 들었던 소프라노 릴리폰스의 노래는 아주 먼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요즘은 릴리폰스 대신 뉴질랜드 출신의 혼혈가수 소프라노 ‘케슬린 베틀’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이 노래는 1987년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 실황 음반에 실려 있다. 당대 최고 지휘자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했는데 비엔나 신년 음악회에선 최초로 소프라노가 노래했으며 지금까지도 유일하다.
요한 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와 함께 봄을 기다리며 이맘때 즐겨듣는 음악으론 멘델스존의 ‘봄 노래’, 신딩의 ‘봄의 속삭임’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 등이 있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는 그가 작곡한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이다. 소프라노 가수인 부인 ‘니나 하게루프’와의 행복한 신혼생활 중에 작곡한 이 곡은 청춘의 꿈과 희망을 가득 담고 있으며 인생의 봄을 찬미하고 있다. 그리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차이콥스키는 “그리그의 음악에는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했고, 독일의 대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는 그리그를 ‘북구의 쇼팽’이라고 했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는 이러한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서정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필치를 잘 보여준다.
봄은 아직도 강 건너 저 만큼 멀리 있는데 마음은 벌써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과 함께 목련이 하얗게 핀 3월을 향하고 있다. 나만 그런가.
음악칼럼니스트·필하모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