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청’은 부산 대구 울산 광주에 다 있다. 인터넷에 ‘북구청’을 검색하면 4개 광역시가 한꺼번에 뜬다. 부산 북구라는 명칭은 1978년 2월 부산진구에서 행정구역이 분리될 때 붙여져 40년째 사용되고 있다. ‘북구’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나 이미지는 방위(方位)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중구 북구 남구 등 동서남북 방위식 명칭의 자치구는 전국에 26곳이 있다. 부산과 대구가 5곳으로 가장 많고, 울산이 4곳, 인천이 3곳이다. 개발 중심, 획일주의의 산물이다. 1995년 단체장을 뽑는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된 지 24년이 지났건만 지자체는 제 이름 하나 온전히 건사하지 못한 꼴이다.

방위가 맞느냐, 그것도 아니다. 어디에 남구가 있고, 동구가 있는가. 북구는 부산시청을 기준으로 볼 때 거의 서쪽이다. 금정구가 오히려 북쪽에 더 가깝다. 오륙도를 껴안은 남구는 무엇을 기준으로 남구라 불렀을까. 지역 정체성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부산 북구가 이름 바꾸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구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지역 특색을 담아 새 비전을 찾겠다는 것이다. 정명희 북구청장의 핵심 공약이다. 올해 예산도 편성했다. 일단 반길 일이다. 북구의 변화가 시작된 듯하다.

개명 후보도 심심찮게 거론되는 모양이다. 구포구, 감동진구, 만덕구, 삼칠구, 낙동구…. 새 이름을 짓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지역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읽고 스토리텔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부산의 진산 금정산과 낙동강을 낀 북구는 예부터 산자수명한 고장으로 물류 요충지였다. 감동진이라 불린 구포나루가 거점이었다. 구포은행은 한국 최초의 지방은행이었다. 만덕동의 만덕사지는 천 년 가까이 지역 스토리를 쌓은 곳이다. 현 구포역 일대에는 삼칠루(三七樓)라는 정자가 있었다. 낙동강 하구의 세 갈래 강물, 즉 삼차수(三叉水)와 강서평야에 우뚝 솟은 칠점산(七點山)을 바라보는 자리다. ‘삼칠’은 여기서 유래했다. ‘삼칠루’란 옛 시에는 중국 절강성(상하이)의 배가 드나들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구포가 국제무역항이었던가 싶다. 연구해볼 대목이다.

새 명칭은 ‘구 명칭 변경추진협의회’에서 공모, 공론 절차를 거쳐 결정하면 될 터이다. 개인적으로는 구포구, 낙동구가 조금 괜찮아 보인다. 하고 보면, 개명 추진 효과는 이미 나타난 셈이다. 이 칼럼이 그렇다.

하지만 마냥 장밋빛 기대만 할 건 아니다. 싫든 좋든 북구(청)를 끌어안고 살아온 입장에서 그 이름이 개똥이든 끝순이든, 이름 바꾸기가 얼마나 어렵던가. 생각이 바뀌고 내용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얘기다. 북구 혁신 작업이 절실한 이유다. 새 이름 짓고, BI(brand identity) 교체한다고 본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먼저, 질문해야 한다. “북구, 무엇을 바꿀 것인가?” “북구의 진정한 자산, 행복의 조건, 미래 가치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답을 찾을 수 있을 때 개명은 빛이 난다. 이름만 바꿔 치장하려면 안 하는 게 낫다.

지난해 인천 남구는 50년간 사용하던 구 명칭을 ‘미추홀구’로 바꿨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미추홀은 ‘물의 고을’이란 뜻이다. 발음이 쉽지 않지만 역사성을 살린 이름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이름만 바꿔놓았을 뿐, 무슨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선 평가가 유보돼 있다.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북구의 개명 작업은 향후 여타 지자체 정체성의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먼저 동·서·남·중구에서 변화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부산 북항과 남항의 명칭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북빈·남빈 매축사업으로 탄생한 북항과 남항은 일제의 방위 개념에 따른 지명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생각해봐야 할 지명 독립 문제다.

바야흐로 자치 브랜드 시대다. 브랜드 없이는 어디 명함도 못 내민다. 부산이란 수식어 없이도 통하는, 당당히 홀로 서서 자치·분권의 가치를 높이는 지자체가 진짜 자치단체다. ‘기초’가 튼튼하면 ‘광역’은 할 일이 많아진다. ‘좋은 이름이 좋은 운명을 만든다’는 말을 믿고 싶다. 북구의 새 이름짓기가 성공하길 바란다.

스토리랩 수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