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1일에는 한국 미술계에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만한 특별한 일이 있었다. 사업가 손창근 씨가 문화재급 미술품 3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이 기증품들은 모두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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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 |
그중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단연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걸작 ‘불이선란(不二禪蘭)’이다. ‘불이선란’은 ‘세한도(歲寒圖)’와 함께 김정희의 회화 세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유배에서 돌아와 과천에서 살게 된 김정희가 20년 만에 그린 난초 그림이다. 본래 이 작품은 시동(侍童) 달준을 위해 그린 것인데, 마침 와 있던 전각가 오규일이 보고 좋아해 억지로 빼앗아 갔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전설적인 작품이다.
난초 그림이라기보다는 바람 맞은 갈대 같은 풀을 거칠게 그렸다. 몇 줄기 먹선만으로 한 포기의 난을 그렸는데, 잘 그리려고 애쓴 흔적은 없다. 여백에는 강건하면서도 활달한 필체로 쓴 화제(畵題) 글씨가 가득 채워져 있다. 거친 난초의 잎과 활달한 글씨가 서로 잘 어울린다.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가 된 듯하다. “난초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우연히 하늘의 본성을 그려냈다”는 화제의 내용이 작품 전체의 모습을 함축하고 있다. 이 순간이 바로 ‘불이선(不二禪)’의 경지일 것이다.
‘불이선란’은 인장이 많이 찍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정희의 인장 외에는 수장인이거나 감상인이다. 이 작품은 유독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다. 오규일의 손에 있던 작품은 같은 동문 제자인 역관 김석준에게 전해졌다가, 다시 후대 권력자 장택상에게 넘어간다. 이후 서화가 이한복, 손재형의 손을 거친 후 손재형의 정치 참여로 사업가의 손에 들어간다. 이근태의 손을 거쳐 손세기의 소유가 된 후에는 다시 다른 이의 손으로 넘어가지 않고 아들인 손창근에게 이어져 내려온다.
그러나 귀한 작품이 개인의 손에 있다는 것은 미술사를 위해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이를 걱정한 손창근은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유물을 기탁하여 전시와 연구에 활용하도록 했다. 기탁이라는 것은 임시로 기관에 맡기는 것일 뿐 완전한 소유권 이전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기탁자가 조건 없이 완전 기증으로 바꾼 것이다. 이제 ‘불이선란’은 다시 세상을 떠돌 걱정 없이 완전히 박물관에 정착하게 됐다.
이제 손창근 소장품 중 기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유일하게 김정희의 천하 명품 ‘세한도’ 한 점뿐이다. 이 작품만 기증하지 않은 것은 손창근 씨의 미술품에 대한 마지막 애정일 것이다. 분명 이 작품도 기증될 것으로 믿는다. 이 작품도 곧 기증돼 아름다운 기증이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