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수상합니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도 지나니 지리산 아래는 완연한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춥지 않은 겨울 탓에 성질 급한 매화는 해가 바뀌기 전부터 한두 송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매화 향기 나는 향수를 뿌려 놓은 양 공기 속에 퍼진 은은한 매화향이 코를 자극하고 마음까지 들뜨게 합니다.
모든 나무는 물이 올라 연둣빛 혹은 연주황색이나 자줏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고 겨울 동안 땅에 납작 붙어서 숨 죽이던 땅풀들도 자기 색을 찾으며 꽃대를 올리고 있는 참 좋은 계절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뭔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계속 받다가 어느 날 아침 왜 그런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새들. 그랬습니다. 새들의 소리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봄은 새 소리부터 온다고 사람들에게 얘기할 정도로 정말 봄이 온다는 느낌조차 없을 때부터 새들은 야단입니다.
입춘이 되기 전부터 온갖 새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느냐며 목청을 다해 ‘지지 재재’ 시끄러울 지경으로 봄을 알립니다. 먼동이 아직 트지도 않은 시간에 주변의 나무에서 또는 숲에서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 아니면 서로 화음을 맞추듯 하며 어둠을 밀어내고 아침을 끌어오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며 도저히 더는 자리에 누워 있을 수 없어 일어나야 할 지경입니다.
봄만 되면 그 소리를 듣게 되다 보니까 그들이 궁금해지고 그들의 이름을 알고 싶어지게 되었고 새 도감을 사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몇 종류 새는 이름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과 아주 잘 어울리는 새도 있고 아주 딴판인 종류도 있어 단조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는 그 소리가 많이 줄었습니다. 오늘만 그런가 싶어 매일 아침 귀 기울이고 관찰해 보지만 역시나입니다. 심히 이상하고 궁금해서 새벽마다 문밖의 소리에 신경을 써 보지만 아주 작은 수의 새만, 그것도 많이 내키지 않은 소리로 희미하게 우는 것입니다. 무슨 일일까? 왜 그럴까? 이렇게 봄은 오는데, 봄보다 앞서 온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럴까?
나만의 느낌일 수는 있겠으나 오는 봄이 약간 맥이 빠진 느낌이 들고 왠지 조금 쓸쓸해지는 느낌도 드는 것입니다. 요즘 너무 심한 미세먼지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아니면 우리 집 주변의 새들만 어디로 이동을 한 것인가? 별별 생각을 다 해보는 요즘입니다.
땅에 먹이가 줄어서 그런가 싶고, 환경이 많이 오염되고 화학 약품을 많이 쓰면서 새의 먹이인 벌레가 줄어들었다는 말도 들은 참이라 어쩌면 그 탓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또 다른 이상한 것은 물까치와 까마귀처럼 약간 큰 새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 새들도 항상 주변에 있었고 각자의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높게 낮게 날아다니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 숫자가 많아졌다는 것을 알고 이것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곤 하지만 새들의 생태계를 모르는 나로서는 답답합니다. 또한 몇 년 전부터 그렇게 자주 보이던 딱따구리의 수도 많이 줄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산을 오르는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종류도 모양도 다양한 딱다구리가 부리로 ‘딱 딱 딱딱’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얼마나 부리가 튼튼하면 저리도 강건한 나무를 뚫을 수 있는지, 저렇게 쉬지 않고 머리에 충격을 주면 머리는 괜찮은지, 사람인 나는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부리질만 하는 것 같은데 어쩌면 저리도 정교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딱따구리 수는 점점 줄고 있고 이제는 그 소리조차도 듣기가 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산길을 걷다가 행여 딱따구리와 나무가 만나서 내는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높이 들고 그 존재를 찾아야만 합니다. 그리고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고 손을 흔들어줍니다.
자연의 도움으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렇게 변해가는 것에 몹시 민감해지며 왜 새들이 점점 줄어가는지 몹시 걱정이 됩니다. 자연의 자그마한 친구들인 새가 살기 힘든 환경이라면 자연의 일부인 사람 역시 힘들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새들의 어여쁜 소리에 환장할 봄날을 기다려봅니다.
산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