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개봉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준 영화 ‘말모이’.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 일본에 맞서 목숨을 걸고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역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말모이는 실제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 1910년대 처음으로 편찬한 순우리말 사전의 한글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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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말모이’의 포스터. |
조선어학회 심부름꾼인 판수의 눈에는 돈도 아닌 말과 글을 왜 모으나 궁금해하며 난생처음 글을 읽으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을 뜨게 된다. 이 영화는 학생부터 노인까지 나이와 성별, 사회적 지위의 구분 없이 소시민들이 한마음 한 뜻을 모아 우리말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에 집중하고 있는 점이 다른 역사영화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그 당시 한글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한심하고 바보스러운 짓, 정말 위험한 짓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말과 글을 지킴으로서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문인들의 독립운동은 우리 언어를 통해 국가와 민족정서와 사람을 지키는 일이었다. 영화는 주인공 정환의 입을 빌려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있다. 그리고 말이 있는 곳에 뜻이 있다.”
영화 말모이를 보며 문득 일제강점기 국악의 명맥을 이어갔던 한 단체가 생각났다. 사람이 모이는 판에는 늘 소리가 있었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민속 성악장르였던 판소리는 당시 대중음악으로서 민간은 물론 구한말 뛰어난 판소리 명창이 궁궐에서 노래를 부르고 고종 임금께 벼슬을 받았을 정도로 그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황이 바뀌면서 평생을 바쳐온 예인으로서의 삶이 이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을 것이다. 전국에 흩어져 활동하던 판소리 명창이 마침내 서울에 모여 ‘조선성악연구회’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이 단체는 일제강점기 1934~1943년 활동했던 민간차원에서 창립된 단체로 민속음악의 명맥을 이어가며 교육과 공연 활동은 물론 전통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음악을 모색했다. 특히 혼자서 일인다역으로 부르던 판소리 전통에 음악극 형식을 도입해 연극처럼 배역을 나눠 맡아 부르는 창극(唱劇)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더욱 완성도 있게 발전시켰다. 이러한 새로운 공연문화는 20세기 초 협률사(協律社)와 같은 극장의 등장으로 공연문화의 중심이 야외에서 실내로 바뀌면서 조선성악연구회는 동양극장을 중심으로 창극을 본격 공연하며 일제의 식민 통치 아래 민중들과 애환을 함께하며 민속악의 저변 확대에 큰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예술관련 단체의 이름에서 ‘-연구회’라는 단체명은 흔치 않을 뿐 아니라 다소 생소하기까지하다. 일제강점기에 민속악 예인들의 의지로 결성한 조선성악연구회라는 단체의 활동은 생계의 어려움에 직면한 그들이 생존과 전승 단절에 대한 위기에서 결정한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소리연구회 소리숲 대표·음악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