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자마자 일본 후쿠오카 공항의 공기는 숨 쉴 만했다. 그저 바다 하나 사이에 둔 지척의 도시인데 미세먼지에 뒤덮인 부산과 너무 달랐다. 대한해협이 에어 커튼 노릇이라도 하는 걸까? 저녁 뉴스의 일기예보마저 평온하여 미세먼지 예보가 있어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주변 바다를 감도는 바람이 저들 말로 신이 내린 ‘가미카제’인지도 모를 일이다. 동아시아 공기 오염의 주범으로 꼽힌 중국은 정부 차원의 대책도 이미 여럿 선보였다. 바람불이 반대쪽 산둥에 공장을 몰아 짓게 한다는 풍문도 도니, 그나마 나은 이 섬나라의 초미세먼지도 전보다 가까워진 중국 공장 때문에 머지않아 급증하지 싶었다.
남의 나라에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참은 아니다. 흙비가 내려 장을 다 버렸다는 장금이 말이 꽤 흥미롭다고 여기던 시절도 벌써 오래고, 희토류를 불어다줘 이로운 면도 있다고 배운 황사가 미울 만큼 미세먼지의 공포가 하늘을 짓누르고 있으니. 재작년 여름만 해도 미세먼지가 덜했다는 기억이지만 작년은 여름조차 사정이 달랐다. 일 년을 꼬박 미세먼지 속에서 지내며 체험한 것은 미세먼지 주의보가 가장 약한 정도로만 내려도 곧 목이 칼칼해질 뿐 아니라 살짝 열이 뜨는 것이 꼭 감기처럼 앓아야 지나가는 몸의 이상증세다. 실내에선 공기청정기를 내내 돌리고 외출할 때는 꼭 마스크를 쓴다고 해결될 문제인 성싶지 않다.
돌이켜 보면 미세먼지라고 알아채기 전부터 미세먼지는 넘쳤다. 모기를 박멸하겠다고 휘발유를 섞어 태운 희뿌연 연기를 뿜어대던 연막소독차, 그 뒤를 멋모르고 들떠 쫓아다닌 경험도 있지만 자동차 뒤꽁무니에서 나는 휘발유 냄새가 좋다고 킁킁거리며 맡던 친구도 있었다. 자동차가 더 이상 드물지 않게 되면서 그 내연기관이 내뿜는 매캐함에 점점 눈살 찌푸리다 못해, 깊은 숨을 참으며 ‘피부호흡을 하지 않으니 망정이지’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세월이다. 지지난 정부가 클린에너지라는 요상한 말까지 지어내 자동차며 기름을 팔아먹는 짓을 보고 가소로워한 적이 있다. 마침 혐연권이 공론에 오르내릴 때였고 연향의 해로움이 자동차 매연보다 더하다고 떠들던 기억도 있다. 비중을 따지자면 담배나 자동차가 발전소나 공장에 댈 것인가. 지상의 그래프는 통계의 함정을 파고 수사법은 몰인정하기 짝이 없다.
나만 아니면 돼. 어떤 연예인이 방송에서 줄기차게 외치던 말은 어쩌면 인간 본성 차원의 목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듣기 거북했다. 나만 아니면 돼의 일상화는 이제 거북하기보다 무섭다고 할 지경이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행을 개념으로 만든 사망과 위험의 외주화가 한 예일 텐데, 늘 있어왔던 일이라고 지나가기에 무서운 일 아닌가. 나만 아니면 돼를 한 번 더 되뇌게 하는 일은 국경 따위는 가볍게 넘는다. 필리핀에 ‘수출’한 생활 쓰레기가 되돌아와 항구에 쌓이는 사태, 치약 따위에 든 미세플라스틱이 물고기를 죽이다 못해 몸에 박힌 채 밥상에 오르는 사태, 경북 의성의 쓰레기 산이 CNN에 보도된 사태까지 줄을 잇는다.
이것은 그저 님비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국제 범죄, 또 다른 사망과 위험의 외주화가 아닌가. 한국은 세계 최대 플라스틱 소비국이다! 이런 더러운 이름은 외면하면 안 된다. 그런데 외면하게 만드는 무서운 주문이 있으니, 바로 나만 아니면 돼 또는 ‘극뽁’ 아닌가. 현대 중국의 대작가 루쉰은 ‘아큐정전’을 짓고 콕 찍어 형언하기 어려울 만치 부패한, 그 시절 중국인의 정신 상태를 아큐 정신이라고 불렀다. 자기 극복은 자기에게만 승리하는 패배를 달리 부른 이름일 뿐이다. 나만 아니면 돼는 따라서 오늘 우리 정신에 안성맞춤이 된 아큐 정신이라고 해야 한다.영화 ‘인터스텔라’의 지구는 먼지투성이 행성이다. 만연한 바이러스가 곡물을 죽여 먹을 것도 점점 떨어져 간다. 영화는 대안 추진을 이야기로 풀어간다. 그 대안이 미국 항공 우주국이 늘 논의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 아무리 아름다운 이름을 갖다 붙인다 해도 결국 떠나는 입장에서 보면 ‘지구 포기 계획’에 불과한 것이지만.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만들 방정식을 풀지 못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박사는 애초에 플랜 비, 곧 지구를 포기하고 인간이 정주할 만한 다른 행성을 찾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양심의 가책은 박사가 임종할 때, 짐작만 했을 뿐 내막을 짚지 못한 주인공의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남았을 뿐이다. 이것은 허구가 아니다. 미세먼지와 겹치는 먼지투성이 지구, 할리우드는 리얼리즘이다. 그 위에 겹치는 또 다른 미세 공포,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아직 해로움을 알지 못한다고 강변해도 짐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쓰레기 행성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쩌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만들 듯, 인간 유전자를 조작해서 어떤 매연이나 미세먼지에도 끄떡없는 인간을 만들어 내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먼지투성이 화성에도 가려는 판 아닌가.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