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지금 먹방에 취해 있다. TV채널을 돌리다 보면 먹방 프로그램 한두 개는 걸린다. 셰프들을 모아 경연을 벌이거나 냉장고를 털어 음식을 만든다. 강제로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를 보고 웃는 프로그램도 있다. 유튜브에 들어가보면 훨씬 많은 먹방이 소개되고 있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먹방이 대세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먹는 데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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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
도대체 먹방이 무슨 문제라는 말인가. 먹방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먹방의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을 알려면 인간의 기본욕구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매슬로우라는 학자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5가지 욕구가 있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다. 생리적 욕구란 먹고 마시고 화장실에 가는 것과 같이 생존을 위해 몸이 생리적으로 요구하는 욕구다. 안전의 욕구는 거친 외부환경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어 하며, 사회적 욕구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이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하는 욕구다. 존경의 욕구는 존경받는 지위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이며,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다.
매슬로우는 이 욕구들이 계층화되어 있다고 했다. 아래 욕구가 채워져야 위 욕구가 생겨난다는 거다. 한 예로 자기 한 몸도 안전하게 추스르지 못하면(안전욕구가 채워지지 못하면) 가정이라는 소속을 꾸미고 싶은 결혼욕구(사회적 욕구)도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을 욕구상향이라고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상위욕구가 좌절되었을 때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하위욕구에 더 집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존경이나 자아실현 욕구가 좌절되면 사람들은 그 아래 욕구인 사회적 욕구를 강화시켜 사람들과 만나고 떠드는 빈도를 늘린다. 이렇게 해 상위욕구 좌절로 인한 상실감을 보충하려고 한다. 이것을 욕구퇴행행동이라고 한다.
먹방은 불행히도 욕구퇴행과 관련 있다. 먹방에 가장 관심을 갖는 사회계층은 청년들이다. 이들이 먹는 것에 지독히도 관심을 갖는 이유는 먹는 것(생리적 욕구)의 상위욕구 즉, 안전의 욕구나 사회적 욕구 그리고 존경이나 자아실현 욕구를 자신의 힘으로 이루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서다. 이들은 풍요로운 사회에 태어났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으며 소나무 껍질로 연명하던 지독한 가난을 경험하지도 않았다. 앞선 세대와 이들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 세대는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꿈이라는 것이 있었다. 악착같이 벌어 먹을 것을 해결하면 자기 한 몸 정도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고 또 사회적 지위도 가질 수 있다는 꿈이 있었다. 다행히 국가사회도 성장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자 상위직급으로의 지위상승도 가능했다. 생리적 욕구→안전의 욕구→사회적 욕구→존경 및 자아실현의 욕구를 단계적으로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금의 청년들은 반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먹는 생리적 욕구와 자신의 안전을 추스르는 안전욕구를 부모가 해결해주고 있다. 당연히 이들에게서는 사회적 욕구나 존경 그리고 자아실현이라는 상위욕구가 강하게 일어나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들의 상위욕구를 채워줄 장이 사라지고 있다. 당장 부모를 떠나면 생존이 어렵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 직장을 얻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직장 얻기가 어려우니 직장을 통한 사회적 소속감도 가지기 어렵다. 대학이나 고등학교 때는 무슨 대학이나 고교에 있다고 소개하면 되지만 졸업 후에는 소개할 소속 자체가 없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통해 가정이라는 소속을 갖고 싶은 꿈도 사라졌다. 상위욕구가 좌절된 인간은 어떤 행동을 보일까. 바로 욕구퇴행행동이다. 어떤 종류의 상위욕구도 채울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가장 하위에 있는 생리적 욕구를 강화하려는 행동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먹방 현상이다. 먹는 것에 집착해서 여기서 얻는 행복감으로 상위욕구를 잊어버리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한다. 그 단초는 일자리에 있다. 일자리가 있어야 상위욕구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정부의 좋은 일자리 늘리기, 기업의 더 많은 청년 선발하기, 청년들의 눈높이 낮추기다. 그것이다. 좋은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이 제대로 설 수 있는 공간을 정부가 만들어주어야 한다. 대기업을 압박해 해외로 나가게 하면 좋은 일자리를 외국으로 몰아내는 꼴이 된다. 중소기업만 우대하다 보면 한국 내 외국인 근로자들의 일자리만 늘려주게 된다. 한국 청년들은 중소기업에 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공장을 세우려는 대기업들을 돌려 세우고, 단순히 중소기업을 늘리거나 보호하는 정책이 아닌 우량한 직장을 줄 중소·중견기업들을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좋은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기업들은 선발인력의 10%를 더 뽑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경비는 늘겠지만 사회가 무너지면 기업도 존립할 수 없다는 엄중한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청년들도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무작정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만을 고집하다 보면 사회에서 영원히 고립될 수 있다. 직장은 단순히 월급 주는 곳이 아니다. 사회에 적응할 기능들을 가르치는 일종의 학습현장이다. 학교가 보편적 교육을 제공한다면 기업은 사회를 살아가는 실무교육을 제공한다. 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 실무를 배울 기회가 박탈돼 영원히 사회로부터 낙오할 수 있다. 당장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직장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키우면서 새로운 직장으로 이동하든, 아니면 다니는 직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든 아무튼 직장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해결돼야 먹방으로 표출된 우리 사회의 어두움을 지울 수 있다.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