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힐러리의 트위터 설전이 최근 외신을 탔다. 힐러리의 내년 대선 불출마 선언에 트럼프가 “다시는 힐러리와 맞붙지 못하게 된다는 건가. 그리울 것”이라며 조롱 섞인 트윗을 올리자, 힐러리가 “너는 왜 그렇게 나한테 집착하니”라고 쿨하게 응수한 것이다.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했다. 트럼프를 스토커 수준으로 만든 힐러리의 재치가 돋보였지만 역대 최악의 대통령 선거전을 치른 당사자들간의 앙금은 그대로 드러냈다.

승부욕과 경쟁의식이 없다면 정치인이 아니다. 특정 자리를 놓고 피 말리는 싸움을 벌였거나 벌일 상대와는 더하다. 가치관이 완전히 다르거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할 땐 단순한 승부욕을 넘어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필생의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봐 주지 못했다. 야당 시절 동석한 자리에서 언론 카메라가 DJ를 비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비서진을 불러 귓속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일부러 연출했다. “덥다. 문 좀 열어라”는 말 정도인데도 카메라 플래시를 자기 쪽으로 돌리는 효과는 충분했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거나 저격수를 자처하는 정치인도 많다. 서로 경력이 비슷할 땐 노이즈 마케팅이 되고, 상대가 거물일수록 그런 집착이나 다툼 자체가 쉽게 자신의 체급을 올리는 방법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이전투구로 비쳐져 싸움을 건 쪽이나 걸린 쪽 모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상대를 공격하다 자신의 협량이나 낮은 수준을 드러내 역풍을 자초하는 일도 잦다.

최근 부산지역 곳곳에서 정치인들의 ‘플래카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의 지역구인 남구을에선 트램 유치를 홍보하는 박 의원의 플래카드 위에 자유한국당 김현성 당협위원장이 교통체증 등 검증이 필요하다는 반박 플래카드를 걸었다. 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의 지역구인 사하구을에서는 조 의원이 자신의 국비 유치 성과를 적은 플래카드를 붙이자 더불어민주당 이상호 지역위원장이 ‘올해는 거짓말하지 맙시다’ 하는 플래카드를 바로 위에다 펼쳤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자신 알리기에 조바심 내는 심정은 알겠지만 매번 ‘말꼬리 잡기’식으로 이어지면 불쾌감과 피로도만 높아진다. 최소한의 정치적 예의도 갖추지 못한 흠집내기 맞불 플래카드는 신인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참신함과도 거리가 멀다. ‘플래카드 스토킹’이라는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