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재난 수준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지난주 한반도를 뒤덮은 최악의 미세먼지가 용케도 물러나며 대한민국은 다소 숨통이 트였다. 때마침 불어준 바람과 봄비 덕분이다. 요즘처럼 최첨단 시대에 그저 하늘의 처분만 기다리는 게 답답하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도리도 없다. 또 언제가 될지 몰라도 그때까지 당분간 요란했던 소동은 잠시 잊힐 터이다. 덩달아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도 시들해질 것이다. 미세먼지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건만 수십 년 이 같은 반복에 점차 무뎌지면서 어느듯 재앙이 돼버렸다.
물론 이번 미세먼지 재난이 가져다 준 성과도 없지는 않았다. 국민의 절망과 분노에 화들짝 놀란 정치권이 여느 때와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야는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할 근거를 담은 법안 등 미세먼지 관련 법안 7개를 13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처럼 마음만 먹으면 처리할 수 있는 법안을 그토록 오랫동안 국회에서 잠 재운 게 신기할 정도다. 하긴 여론에 떼밀려 부랴부랴 뒷북 대응한 게 한둘이 아니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나마 여야가 미세먼지 관련 법안을 처리키로 합의했지만 이것으로 정치권의 소임이 끝난 게 아니다. 뒤늦게 서두르다 보니 충분히 심의하지도 못하고 졸속 입법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최악의 미세먼지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 여당과 일부 야당의 네 탓 공방이다. 미세먼지 해법의 본질은 온데간데없이 서로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정쟁에 더 골몰한 모습을 보여서다. 미세먼지가 특정 시기 갑자기 발생한 게 아닐 바에야 아무런 답도 주지않는 쓸데없는 입씨름으로 일관했다. 가뜩이나 미세먼지로 답답한 국민의 숨만 더 턱턱 막히게 하는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무대책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미세먼지 30% 저감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도 달라진 게 하나 없으니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비상한 상황이니 비상한 조치를 강구하라”는 것뿐이다. 당장의 정부 조치라곤 문자서비스와 효과가 의문인 비상저감조치 시행이 거의 전부다. 국민이 믿을 건 마스크 아니면 실내 생활밖에 없다. 관계부처 장관들은 대통령의 호통에 현장으로 달려가며 보여주기 쇼에 바쁘다. 미세먼지가 심해질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행태다. 이런 판에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한들 뭐가 달라질지 의문이다.
정부의 무능 못지않게 답답한 건 자유한국당의 비상식적 공세다. 황교안 대표는 “네티즌들은 미세먼지가 아니라 ‘문세먼지’라면서 대통령의 책임을 따지고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 정권은 북한 때문인지 중국의 눈치만 살펴보면서 강력한 항의 한 번 못 하고 있다”고도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우리 국민께서는 탈원전 정책이 결국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를 급증시킨다는 것을 충분히 앞으로 인지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현 정부의 무능을 야당이 질책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문세먼지’란 말장난까지 동원하며 매사 ‘기-승-전-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공세가 미세먼지 해법에 무슨 도움이 될지 궁금하다. 아직 본격화하지도 않은 탈원전을 미세먼지와 연결시키는 것도 무리수다. 비판은 언어유희가 아니라 합당한 근거에 바탕을 둬야 한다. 현 정부의 무대책이 문제가 있기는 해도 자신들도 과거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던 사안 아닌가. 자기 얼굴에 스스로 침을 뱉은 꼴이다. 국민의 고통해소보다는 미세먼지를 오직 정쟁의 소재로만 접근한 결과다.
한국당의 이런 공세에 ‘황세먼지’라고 대응하며 이전 정부에 책임을 돌리기 바쁜 여당도 꼴사납긴 마찬가지다. 미세먼지는 어느 한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힘들다.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해법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수십 년 쌓여온 환경문제에 기후변화까지 겹친 고차 방정식과도 같다. 중국 요인이 크다고는 하나 과학적인 증거는 뚜렷이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의 주요 요인이 무엇인지도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단 하나 분명한 건 지금까지의 해법으로는 결코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제서야 그 위험성을 재난 수준으로 인식했고, 해법에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세먼지는 책임 공방으로 해소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여야를 떠나 초당적이고 범국민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정부에 범사회적 기구 구성을 제안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만큼은 여야가 머리를 맞대자는 것이다. 말이 좋아 초당적 대처이지 지금까지의 우리 정치 풍토를 감안할 때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권이 쓸데없이 네 탓이나 하며 국민의 숨을 더 막히게 하는 아둔한 짓을 멈춰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