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바로크 음악가 안토니오 비발디와 16세기 르네상스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다른 시대를 살다간 예술가였지만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이탈리아 사람이고 아버지에게서 직업과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았으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똑같이 ‘사계’가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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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봄’, 1563년. |
두 예술가가 사계절의 특징을 각각 4개의 음악과 그림으로 표현한 ‘사계’는 초등학생들도 아는 세계적인 명작이라는 점도, 그중 ‘봄’이 가장 유명한 것도 공통점이다.
아르침볼도는 21세 때 아버지와 함께 밀라노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 작업을 맡으면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562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페르디난트 1세의 부름을 받아 프라하로 간 이후 그의 아들인 막시밀리안 2세와 손자인 루돌프 2세까지 20년 넘게 3대에 걸쳐 왕을 섬기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 초상화가로 활동했다.
이 그림은 아버지를 이어 새로운 황제가 된 막시밀리안 2세의 초상화다. 그런데 화면 안에는 모델을 닮은 인물은 없고 과일과 꽃만 가득 그려져 있다. 황제의 초상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표현한 4점의 시리즈 중 하나로, 사계절은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뉘는 인생의 네 단계를 의미한다. 각각의 초상은 그 계절에 나는 과일과 채소, 식물들을 조합해 만들었다. 봄을 표현한 이 그림의 경우 봄에 나는 꽃과 과일, 식물들로만 구성했고 여름은 여름 과일과 식물, 가을은 가을 곡식과 과일, 그리고 겨울은 나무뿌리를 조합해 완성했다. 일반적으로 초상화와 정물화는 서로 다른 장르지만 이 경우엔 초상화이자 동시에 정물화인 것이다. 이렇게 화가는 일상의 재료들을 정교하면서도 창의적으로 조합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보이게 하는 ‘이중 그림’을 개발해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럼 자신을 전혀 닮게 그리지 않은 이 파격적이고 기괴한 초상화를 본 황제는 과연 어떤 반응이었을까. 놀랍게도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화가를 칭찬했다고 한다.
16세기 종교분열의 시대를 살았던 막시밀리안 2세는 스스로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신교에 우호적이었고, 학문과 예술을 장려한 군주이자 르네상스 문예부흥에 앞장선 후원자였다. 아르침볼도는 그런 황제에 대한 찬사를 풍성하고 아름다운 봄의 정물로 표현한 것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단순하고 단조로운 삶을 살았던 그 시대에 그림은 하나의 즐거운 오락거리이기도 했다. 야채 과일 식물 등 유기물로 구성된 이 독특한 발상의 초상화는 당시에도 크게 존경받았고 지금의 눈으로 봐도 매우 창의적이고 매혹적이다.
400년 전 아르침볼도가 제시한 이중 이미지와 시각적 유희, 발상의 전환은 살바도르 달리나 마르셀 뒤샹 같은 20세기 혁신적인 미술가들뿐 아니라 후대의 많은 소설가 음악가 영화감독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