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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정치의 봄은 언제 올 것인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3-14 19:37:26
  •  |   본지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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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에 시달렸던 겨울을 저 멀리 두고 새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계절의 전령인 꽃들은 봄소식을 서로 먼저 전하기 위해 열띤 경쟁을 한다. 서로 경쟁적으로 피는 것을 보면 꽃들도 시새움을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남보다 낫게 피려고 다툴 뿐이기 때문이다. 맞서 애를 쓸 뿐이기 때문이다. 꽃들이 이렇게 애를 쓰기 때문에 봄의 산천은 온통 성실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그림 서상균
성실한 만큼 꽃들의 시새움과 경쟁은 건강하다. 남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다 공연히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훼방 놓거나 남을 누르고 올라서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꽃은 어서 나도 아름답게 피어야지 하고 서두르기도 하며, 서두르다가 때를 앞질러 피어나 궂은 날씨에 손해를 좀 보는 일도 있다. 그래도 남을 해치려고 음모를 꾸미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의 개화에 열중할 뿐이다. 꽃들이 시샘해서 하는 일이라곤 자신의 성장일 뿐이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꽃들은 ‘자기 성숙’으로 경쟁한다.

정치 무대도 전형적인 경쟁의 장이다. 각 정치인이 속한 정당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한다. 그래서 현대 민주주의의 정당을 수권 정당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정당들이 봄꽃처럼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성실한 노력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그런 에너지를 발산하기는커녕 ‘냉전의 대립’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아직 한겨울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냉전은 열전보다 위험하다. 대치하는 자들이 모두 몰락하는 대열전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냉전의 음습한 기운과 긴장이 나라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냉전(Cold War)’이란 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을 중심으로 각각 나뉜 국제정치적 진영의 긴장과 대립을 묘사하면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말은 너무 유명해져서 가정에서 부부 사이의 심각한 관계 악화를 뜻할 때도 쓰인다. 엄마 아빠가 냉전 중이면 아이들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단다. 하긴 정치권에서 냉전이 지속되면 나라 사람들은 매우 불편하다.

국제적이든 국내적이든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냉전에는 몇 가지 본질적 특징이 있다. 그 첫째가 불통이다. 미·소 냉전 시대에도 양 진영 사이의 소통 부재를 해결한다고 ‘핫라인(Hotline)’이란 걸 설치했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작동된 적은 없다. 핫라인 설치라는 것 자체가 당시의 불통 정도를 잘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현재 우리나라 여야 정치권은 완전 불통 상태이다. 불통이라고 해서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불통의 언어적 현상은 진지한 대화와 소통이 아닌 막말, 빈말, 말바꾸기로 대표된다. 서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니 막말이 난무하고, 서로 상대를 기만하려 하니 빈말이 성행하며, 정치적 소신이 없는 자들이 당과 의원들을 대표하니 말바꾸기가 부끄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냉전에 언어가 고생하는 형국이다.

냉전이 불통의 상징임은 쉽게 알 수 있다. 흔히 놓치는 것은 냉전이 변화에 무심하며 ‘과거의 망령’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훨씬 더 위험하다. 이는 국제적 냉전 시대에도 그랬다. 과거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며 상대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의 냉전에서도 불통을 깨는 대화, 아니 말싸움은 서로 과거의 일들을 들추어내면서 상황을 악화시킨다. 그러면서 자기반성과 개선의 노력에는 전혀 무심하다. 정치적으로 비유하면 변화, 개혁, 혁신의 가능성이 차단된 상태를 강화하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권의 냉전은 이를 아주 잘 보여준다.

전직 대통령들의 공과에 대한 수많은 궤변이 그렇다.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평가에 대한 왜곡도 그렇다.

특히 대통령 탄핵에 대한 시시비비 내지는 설왕설래는 ‘그냥 해본 말’에 그칠 수 없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 탄핵이 실현된 것은 우리 헌정 사상 딱 한 번 있었던 일이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충격은 냉철한 사유까지 흔들 수 있다. 그만큼 그 의미를 무수히 과장하고 왜곡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있다.

지금 정치권에서 정략적 요소로 활용하는 이 모든 것은 과거의 망령들을 모두 돌아오게 한다. 과거가 돌아와 현재가 숨쉬기 힘들면 미래는 없다. 이는 보수든 진보든 모든 정치권이 명심해야 한다. 낡은 것들이 영속하려는 고집은 “악취 나는 향수가 여전히 머리털에 뿌려지기를 요구하는 완고함과 비슷하고, 썩은 물고기가 여전히 사람에게 먹히기를 바라는 자존심과 비슷하며, 송장들이 여전히 산 사람들을 포옹하러 돌아오려는 뒤틀린 애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말이다.

위고는 맹신, 위선, 편견 같은 과거의 망령들은 “그것들이 모두 망령이면서도 생명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다”고 한다. “도깨비는 멱살을 잡고 넘어뜨리기가 힘들다.” 그러니 그것들과 맞붙어 쉴 새 없이 싸워야 하는 것이 인간공동체의 운명 가운데 하나라고까지 말한다. 위고는 이렇게 결론 짓는다. “과거가 죽었다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과거를 여기저기서 존중하고 어디서고 아껴준다. 만약 과거가 살아 있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공격하고, 그것을 죽이려고 애쓴다.”

우리는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며 정치의 미래를 보아야 한다. 20세기 말에 이미 시작된 일이지만 디지털 통신기술의 발달과 SNS의 확산은 점점 더 ‘국민의 의사 속도’로 정치과정이 진행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의 연령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변화가 일상적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매화가 피고 지고 목련이 만개했다. 곧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어날 것이다. 봄의 행진은 거침없는데 정치권은 한겨울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계절의 도래 없이 정치의 냉전은 한 해 후의 겨울로 바로 연결될지도 모른다. 아니 차기 대선까지 그렇게 가기를 원하는 못된 정치인들이 의외로 많을지도 모른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부수적이 아니라 우리 정치의 본질적 문제다. 정치의 봄은 언제 올 것인가.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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