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해 처음 맞이하던 봄날, 그 봄빛을 가장 따뜻하게 한 것은 쉬는 시간 교정에 울려 퍼지던 가곡이었다. 그것은 아마 지금 필자가 클래식 음악에 젖어들게 한 시발점이었으며 그때 정겹게 듣던 ‘동무생각’과 ‘봄처녀’ 등은 지금도 아득히 지나간 옛 학창시절을 그립게 한다. 그후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4월이 저만큼 가까이 올 때면 애지중지하는 턴테이블 위에는 몇 개의 가곡이 주인행세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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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가곡’제1집 LP판(왼쪽 사진)과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 LP판. 둘 다 아주 귀한 LP판이다. |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개나리꽃이 언덕을 가득 채울 때면 박화목 시, 채동선 곡 ‘망향’ (이 곡은 이은상 시, 채동선 곡 ‘그리워’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이 나의 애창곡이 된다. ‘꽃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 내 마음은 푸른 산 저 넘어 / (중략) / 그대가 있어야 봄도 있고 / 아득한 고향도 정든 것일레라.’ 테너 신인철의 애잔한 노래소리에 3월의 하루는 여지없이 지나가 버린다.
음악을 듣는 데 계절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도 하겠지만 이 가곡 외에도 필자가 봄날에 즐겨 듣는 음악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과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가운데 3악장 느린 부분’, 그리고 좀 더 클래식한 것을 찾는다면 바흐의 ‘플루트소나타’ 등이다. 이 중에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은 예후디 메뉴인의 바이올린과 빌헬름 켐프의 피아노 연주를 즐겨 듣는다. 물론 여기서 ‘봄’이란 제목은 베토벤 자신이 직접 붙인 것이 아니다. 이 곡이 마치 봄날과 같이 포근하고 희망과 행복에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 출판상이 붙인 것이라 하지만 겨우내 움츠렸던 새싹들이 얼었던 대지를 뚫고 파릇파릇 돋아나듯 밝고 생기에 찬 1악장도 좋고 가는 버드나무 가지에 물이 올라 연둣빛을 띠는 봄날 오전 한때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2악장은 너무나 평화스럽다.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는 바르크 음악이 그렇듯 맑고 깨끗한 자연을 대하듯 소박하고 아름답다. 연주는 막상 스 라리외의 플루트와 라파엘 푸야나의 하프시코드, 비란트 쿠이즈켄의 비올라다감바로 된 두 장짜리 LP레코드를 즐겨 듣는다.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은 겨울에 즐겨 듣지만 교향곡 2번 가운데 3악장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회화적인 느낌을 준다. 러시아의 거대한 자연을 떠올리게도 하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가난한 여인들’에 나오는 어떤 정감이 생각나기도 한다. 봄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2번 가운데 2악장’을 올려놓기도 하고 최명림 시에 장일남이 곡을 붙인 우리 가곡 ‘추억’을 들으며 지난날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지나간 것이 색이 있다면 / 아마 엷은 미색일게다 / 봄날 가벼이 엷게 물들인 / 나비의 날개처럼 / 지나간 것이 색이 있다면 / 아마 엷은 미색일게다.’
음악칼럼니스트·필하모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