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꼭 100년째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으려 광복의 의지를 전 세계 만방에 외친 일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쾌거이다. 당시 전국 방방곡곡에서 각 분야의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독립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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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석 작 ‘무동낙희’ |
그러나 아쉽게도 미술 분야에서 이렇듯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민족의식을 드러낸 장면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이런 점에서 한국 근대기의 대표적인 화가 정재(鼎齋) 최우석(崔禹錫, 1899~1965)이 그린 ‘무동낙희(舞童樂喜)’라는 그림은 매우 특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암울했던 시대에 우리나라의 민속을 그린 것이다. 당시는 조국을 빼앗긴 상황이었는데도 놀이하는 사람들이 춤을 추며 즐거워하고 있고, 한쪽에는 잃어버린 조국을 상징하는 태극기가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다.
알려진 대로 최우석은 다양한 화풍을 가진 기교가 뛰어난 화가였다. ‘무동낙희’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능력이 잘 발휘된 빼어난 작품이다. 등장 인물만 해도 무려 15명이고, 인물의 묘사도 뛰어나고, 각각 개성적이지 않은 인물이 없다. 다른 풍속화에 비해 보통 정성이 들어간 것이 아니다. 또한 인물들의 동작은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 작품 전체에 움직임을 준다.
‘무동’을 어깨에 올린 ‘밑동’이 ‘사미승’을 쫓고, 사미승은 냅다 도망치고 있다. 사미승은 흰 바지저고리에 장삼을 걸치고 머리에 흰 고깔을 쓰고 있다. 주변에는 악사들이 꽹과리와 북을 치고, 이들 주변에 상모 모자를 쓴 이와 다른 무동이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무동놀이하는 이들은 한데 어우러져 있고, 관객들은 딴청을 해가며 구경하고 있다. 각 인물들의 모습이 생생히 살아 있다.
‘무동낙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역시 놀이패의 뒤에서 높이 들고 있는 ‘태극기’이다. 보통 민속놀이에서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과 같이 풍요를 기원하는 깃발을 드는데, 이 작품에서는 의외로 태극기를 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그림 속 깃발이 단지 농사의 주술적 상징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그렸을 수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태극기의 모습도 독립신문의 태극기 문양에 있는 태극과 팔괘의 모습과 거의 같다. 당시 식민지 현실을 생각하면 생각하기 어려운 소재이다. 그럼에도 최우석이 굳이 태극기를 넣은 것은 분명 무슨 뜻이 있을 것이다. 혹시 제국주의에 신음하는 한국인의 저항 의지를 넣고자 한 것은 아닐까.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작가들의 조국에 대한 의식과 시대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