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집은 3월이 한 해의 시작이다. 올해도 그렇게 새 학기가 시작됐나 싶더니 어느 새 한 달이 지났다. 아이가 6학년이라 초등학생으로 마지막이다 싶어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시작부터 좀 달라서 안심이 됐다. 올해는 학교에서 ‘충성맹세서’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의 학교에서 이 문서를 받은 건 2학년 때부터였다. 4학년 때까지 왔던 걸로 기억되는데 다행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오지 않았다. 종이엔 서약서라 적혀 있었지만 내게는 충성맹세서로 보였다. 내용은 아이가 교칙을 위반할 경우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겠다는 거였다. 서약서는 회사에 입사할 때 회사의 기밀을 유출하거나 해사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쓰거나 신하가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나 쓰는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잘못 알았던 걸까.
아이의 이름을 쓰고 학부모 이름을 쓴 다음 사인을 해오라는데, 고민이 시작됐다. 학교에서 아이를 교육의 대상이 아닌 계도의 대상으로, 잘못된 일이 있으면 처벌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아 심란했다. 아이가 교칙을 위반하면 그때 처벌에 대한 안내가 뒤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런 벌이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내용이 과연 교육에 도움이 될까. 교권 보호를 위해 담임교사가 낸 자구책일까. 고민은 꼬리를 물고 끝이 없었지만 결국 사인을 해서 아이에게 들려 보냈다.
우리 아이만 안 써서 보내면 아이가 불이익을 받는 건 아닌가, 1년을 함께 할 담임교사에게 아이가 흠잡히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서약서가 타당한지 가려야 하는 마음을 덮었다.
첫해에는 서약한다는 내용만 있더니 이듬해에는 교칙 위반 사안별로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 항목별로 정리가 된 내용이 추가됐다. 그렇게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올해도 충성맹세서를 적어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올해는 충성맹세서 대신 한 해 동안 반을 어떻게 꾸려나가겠다는 담임교사의 다짐이 집으로 왔다. 참으로 신선했다. 궁금한 점이나 아이에 대해 상담할 일이 있다면 일과 시간 내에 연락해 달라는 문구가 인상 깊었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생기니 이후의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권위는 힘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존경이 있으면 저절로 생기는 거라는 걸 실감했다.
사회부 차장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