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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가장 인간적인 인간 /조송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01 19:20:2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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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인생사를 훑어보노라면 유난히 마음이 짠한 경우가 있다. 영국의 천재 수학자이자 컴퓨터과학의 선구자인 앨런 튜링(1912~1954)이 그렇다. 맨체스터 색빌 공원에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를 들고 벤치에 앉은 튜링의 동상이 있는데, 동판에는 이런 문구가 적혔다.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수학자, 논리학자, 2차 대전 암호 해독자, 그리고 편견의 희생자’.

튜링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를 나와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논리학과 수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차 대전이 터지자 암호해독팀에 들어가 독일 암호체계 해독 기계인 봄베, 프로그래밍 기능까지 갖춘 컴퓨터 콜로서스를 개발해 연합군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종전을 2년 앞당기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특히 튜링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개념을 제시했다. 그의 천재성이 봄날 벚꽃 피듯 발화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에 몰두하던 그는 갑자기 경찰에 체포된다. 죄목은 동성애. 2년의 징역형과 화학적 거세형 중 선택을 강요받고 후자를 택했다. 연구를 계속하기에는 그게 나을 것 같았다. 오산이었다. 가슴이 여자처럼 부풀어 올랐고, 광채를 발하던 그의 두뇌는 흐릿해져갔다. 심한 자괴감과 모멸감에 휩싸인 튜링은 독을 주입한 사과를 베어 먹고 자살했다.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는 편견에 희생된 튜링의 상징이다. 젊은 시절 컴퓨터에 푹 빠졌던 스티브 잡스가 이걸 몰랐을 리 없다. 애플사의 로고는 잡스의 튜링 오마주(경의의 표시)가 아닐까 싶다. 튜링은 죽음과 함께 잊혔다. 영국 정부가 그의 존재와 빛나는 성취마저 철저히 봉해버렸다. 당시 동성애를 ‘추악한 외설행위’로 규정한 영국은 튜링을 수치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그는 ‘편견의 희생자’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튜링 탄생 100주년이던 2012년 영국 시민들이 그의 명예회복운동을 펼쳤다. 이듬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튜링을 사면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드디어 ‘AI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튜링은 1950년 철학저널 ‘마인드(Mind)’ ‘계산기와 지능’이라는 논문을 통해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는 인공지능 판별법으로 불리는 튜링테스트(흉내게임)을 고안했다. ‘컴퓨터와 인간의 반응과 구별할 수 없다면 그 컴퓨터는 생각한다고 간주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세계 인공지능(AI) 학계는 1991년부터 매년 특별한 대회를 치른다. 튜링 테스트 대회인 ‘뢰브너 프라이즈(Loebner Prize)’이다. 튜링이 당초 제시한 인공지능 판별법으로 인간연합군(4명)과 인공지능 프로그램(대화로봇·chatterbot)들 간의 대결이다. 블라인드 면접 상황을 상상해보자. 응시자는 인간과 인공지능이다. 심사위원은 두 상대방 중 한쪽과 5분과 대화를 나눈 뒤(직접 대화가 아닌 문자로) 다른 쪽과도 5분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10분 동안 생각한 뒤 둘 중 어느 쪽이 인간인지 확신 점수를 매겨 결정한다.

심사위원 30%를 속여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면 그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진짜 ‘생각하는’ 인공지능으로 평가받는다. 아직 그런 AI는 나오지 않았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인간으로 착각하게 만든) 프로그램은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라는 타이틀을 차지한다. 인공지능과 겨룬 인간 연합군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참가자에게 ‘가장 인간적인 인간’ 타이틀을 준다.

인간인 척 하는 인공지능에 맞서 인간임을 확신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다움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뭘까, 라는 물음이 뒤따른다. 2009년 뢰브너 프라이즈에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 상을 수상한 저술가 브라이언 크리스천은 “튜링 테스트는 적(인공지능)을 알아야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인간)을 알아야 하는 게임”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다움의 핵심 요소로 소통과 공감을 들었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학생들의 교육 방향과 내용에 고민이 깊은 교육계가 참고할 만하지 않을까.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동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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