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떠올린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던 그 말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기에 요즘은 그 취임사가 더 씁쓸하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주식 보유 논란은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 2기 내각을 구성할 장관 후보자의 자질 논란과 김의겸 청와대 전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만 봐도 그렇다. 낙하산 인사, 블랙리스트 등 문재인 정부가 적폐라고 지적하는 것이 이 정부에서도 행해지는 데도 “문제가 없다”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대응이 이어지는 데 대한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4·3보궐선거의 엄중한 결과는 돌아선 민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데도 청와대 내부에서는 그래도 부산 울산 경남(PK)이니 잘되면 2 대 0으로, 못 되더라도 간발의 차이로 패할 것으로 기대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PK 민심이 돌아섰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한 지 꽤 됐음에도 이런 청와대의 현실 인식은 어디에서 나올까.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말은 문재인 정부의 인사들이 전매특허처럼 사용하는 표현이다. 정권 초반만 해도 ‘맡은 바 소임을 다 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은 ‘누가 뭐라 하든 내 갈 길 가겠다’로 자동번역돼 들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청와대가 여론에 귀를 닫고 자신들이 가는 길이 절대 진리와 정의라는 생각에 몰입한 것은 아닐까.
‘인간 문재인’의 공감 능력은 뛰어나다지만 ‘대통령 문재인’의 공감 능력에 대해서는 이제 물음표가 붙는다. 문 대통령은 정부 정책이 국민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며 소통과 홍보 역량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라고 지시했다. SNS를 통해 일방적으로 청와대 소식을 전하는 홍보는 잠깐 관심을 끌기에는 성공할지 몰라도 소통 창구 역할은 할 수 없다. 청와대와 여당의 실책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에도 해외 순방 중 B컷 사진을 SNS에 공개하는 무감각함을 보면서 청와대가 소통과 홍보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의아할 때가 많다.
취임 2주년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나 홀로 정의롭게 뚜벅뚜벅 걸어간다’는 자기 최면에서 벗어나 바닥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추길 바란다.
서울정치부장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