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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건 칼럼] 암운 드리운 도보다리 회담 1주년

판문점선언 후 평화 무드, 하노이회담 결렬 후 냉랭…북, 남측에 비난 공세까지

북핵 협상 지렛대 역할, 남북 관계 훼손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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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이면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을 맞는다. 남북 정상이 한반도 평화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역사적인 날이다. 회담 이후 그야말로 숨가쁜 한 해를 지나온 만큼 1주년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급속히 진행될 것 같던 한반도의 봄은 여전히 갈 길이 멀기만 하다. 북미 하노이회담이 결렬된 후폭풍이 거센 탓이다. 이 때문인지 27일 정부 등이 판문점에서 개최하는 1주년 행사도 시들해졌다. 행사의 한 축이 돼야 할 북측 참여 여부가 불투명해서다. 반쪽 행사가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하기야 북측이 참가한다 한들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뜻깊은 자리가 되기도 어렵다.

1년 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고, 도보다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환담할 당시만 해도 화사했던 그날처럼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성큼 다가선 듯했다. 이후 진행된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1차 북미 정상회담은 이런 기대를 한껏 키웠다. 실제 남북은 당시 합의대로 많은 부분에서 관계 개선을 이뤄냈다. 9·19 군사합의로 일체의 적대행위가 중단됐고, 연락사무소도 개설됐다. 하지만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과 함께 모든 게 멈춰선 형국이다.

그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올해 3·1절 100주년을 맞아 추진됐던 남북 공동 기념식은 북측의 뚜렷한 설명도 없이 무산됐다. 북측은 당분간 남북협력사업이 힘들다는 입장을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판문점선언에 따라 매주 1회 소장 회의를 개최키로 했던 남북연락사무소도 개점휴업이다. 북측 소장이 참석한 것은 한 차례뿐이었고 나머지는 소장 대리 등이 대행하는 등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은 최근 시정연설에서 “남북관계를 지속적이며 공고한 화해 협력관계로 전환”하는 게 확고부동한 결심이라고 말하면서도, 남측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곤혹스러운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벼랑 끝에 선 한반도 평화를 위해 힘든 중재역을 자임했지만 돌아온 것은 날선 비난뿐이었으니 말이다. 국내에선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란 비아냥에 시달리고, 북측으로부터는 오지랖 넓다는 엉뚱한 소리까지 들었으니 답답할 만도 하다. 서둘러 달려간 미국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별다른 성과를 얻어낸 것 같지는 않다. 그야말로 옴짝달싹할 여지가 없다. 이게 판문점선언 1주년을 맞아 문 대통령이 맞닥뜨린 엄연한 현실이다.

북한 비핵화가 단기간에 해결될 정도로 간단한 사안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약간이라도 판이 흔들리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하노이회담은 잘 말해준다. 단지 지난 1년여 남·북·미 사이에서 벌어졌던 획기적인 해빙 무드가 금방이라도 비핵화로 이어질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한때 다급한 것처럼 보였던 트럼프는 북한과 대화를 서두를 것 없다며 느긋한 입장이다. 올해 말까지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보겠다는 김 위원장 발언에 대한 응답이다. 기나긴 장기전의 서막이 열린 듯하다.

최근 북한의 미온적인 남북관계 개선 의지와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 공세는 남측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자신들의 비핵화 입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못한다는 불만이다. 하지만 정작 문 대통령이 제안한 4차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청와대가 4차 정상회담이 열리면 트럼프 대통령이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계획까지 밝혔지만 가타부타 말이 없는 것이다.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보겠다는 입장이라면 오지랖 넓다고 비난할 일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중재역을 더욱 적극 주문하는 게 옳다.

북핵 협상이 다시 교착상태에 빠지긴 했지만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도 남측의 중재 역할 때문이다. 아무리 북미의 양자 간 문제라고 해도 이를 송두리째 부정하고서 비핵화가 진전을 이룰 수는 없다. 우리 정부에조차 진정성과 신뢰를 보이지 않고 미국을 설득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북핵 협상의 지렛대로서 남북관계 개선은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북한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전략적이든 다급함의 표출이든, 비난의 화살이 남측을 향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4·27 판문점 선언 말미에는 ‘양 정상은 정기적인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해 민족의 중대사를 수시로 진지하게 논의하고 신뢰를 굳건히 하며…’라고 분명히 명기하고 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합의 문구는 조금씩 빛이 바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 정부에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가 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진정 그걸 원한다면 스스로 1년 전 판문점 합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게 먼저다. 북한 스스로 신뢰를 저버리는 판에 어떻게 우리가 미국의 변화만을 요구할 수 있겠나.

논설실장 jj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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