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상현의 끼니] 기장멸치식해와 엔초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24 19:10:34
  •  |  본지 2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기장 앞바다에서 잡히는 멸치는 부산이 가진, 가장 원형에 가까운 식재료다. 몸길이 10~15㎝로 이미 성어가 되었지만 봄에 잡히는 멸치는 여리고 부드러웠다. 소금과 만나면 여린 살점이 녹아나 감칠맛이 풍부한 액젓으로 다시 태어났다. 멸치 한 통 천일염에 절여 놓으면 1년 내내 든든했고 심지어 김장 걱정까지 덜었다. 기장멸치는 그렇게 부산 식문화의 근간이 되었다.

부산 기장군 대변항 방파제횟집의 멸치식해.
하지만 나는 늘 아쉬웠다. 남미 페루 앞바다에서 잡힌 멸치는 깨끗하게 살코기만 발라내 올리브유에 절여 캔에 담으면 ‘엔초비’가 된다. 엔초비는 미국과 유럽에서 샌드위치, 샐러드, 피자 등에 두루 사용되는 요긴한 식재료다. 멸치처럼 작은 생선을 발효시킨 태국의 남프라와 베트남의 느억맘은 ‘피시소스’란 이름으로 세계 각국 요리의 조미료로 활용된다. 엔초비와 피시소스. 이게 뭐 거창한 것처럼 들리지만 영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엔초비는 멸치고 피시소스는 액젓이다. 기장 앞바다에서 잡힌 멸치의 품질이나 우리나라의 수산물 가공기술이 페루 태국 베트남보다 오히려 나았으면 나았지 떨어질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기장멸치는 왜 엔초비와 피시소스가 되지 못하는지 그게 늘 아쉬웠다.

그런데 지난달 초 엄청난 발견을 했다. 대변항 ‘방파제횟집’의 안주인이 맛이나 보라며 멸치로 만든 식해 한 접시를 건넸다. ‘멸치식해’. 이건 두 가지 점에서 의외다. 일단 식해는 함경도나 강원도의 전통음식으로 부산에서는 생소한 음식이다. 명태나 가자미처럼 살이 희고 담백한 생선을 조, 수수 등의 곡물과 함께 발효시키는 게 상식이다. 멸치처럼 지방이 많고 비린내가 심한 생선으로 식해를 만든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속는 셈 치고 삭힌 멸치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잠시 후 침샘이 폭발하고 정신은 번쩍, 심장은 요동쳤다. 멸치식해는 함경도식 식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맛을 보여줬다. 훨씬 자극적이면서 훨씬 개운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부산의 정서를 닮았다. 밥도둑 랭킹을 정한다면 간장게장, 토하젓, 어리굴젓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음식이다.
어찌나 욕심이 나는지 따로 좀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아쉽지만 내게 준 것이 지난겨울에 담은 마지막이었다. 늦가을이 되면 그때 다시 오라 했다. 나는 또 한 번 무릎을 쳤다. 봄에 잡히는 기장멸치는 액젓을 담지만 가을에 잡히는 것은 뼈와 살이 단단해 육젓을 담는다. 식해에는 당연히 육젓용 멸치가 어울린다. 가을에 기장에서 잡히는 멸치는 봄에 잡히는 것에 비해 관심도 덜하고 명성도 떨어진다. 그러니까 방파제횟집의 안주인은 멸치식해의 개발로 가을 멸치의 몸값을 올릴 대안을 찾아낸 것이다. 멸치식해만 잘 보급되고 정착된다면 어쩌면 대변항은 봄보다 겨울이 더 맛깔스러운 항구로 변할지도 모른다.

이런 제 말이 의심스럽거나 반드시 확인해보고 싶으시면, 꼭 기억하셨다가 올 11월 이후 기장군 대변항으로 한 번 가보십시오. 일단 저는 반드시 갈 겁니다. 맛칼럼니스트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BRT에 밀려나는 시청 앞 70살 느티나무 어찌하나
  2. 2해·수·동 규제 풀리자 부산 아파트 경매시장도 들썩
  3. 3반쪽짜리 윤창호법이 제2의 윤창호 만들었다
  4. 4“공천 전횡 막겠다”-“경질해야”…김세연 vs 친박계 정면 충돌
  5. 5한화에어로 또 따냈다…미국 GE 3억불 납품 계약
  6. 6부산대 의예과 288·동의대 한의예 278
  7. 7“무시당하던 한국 이젠 주역”…한·아세안 외교 30년 말하다
  8. 8김해신공항 검증 해넘겨…PK 여당 총선 전략 ‘비상’
  9. 9“사람따라 알코올 분해 제각각…숙취운전 방심 금물”
  10. 10짧게 맡겨도 최고 3% 이자 ‘파킹통장’ 짭짤하네
  1. 1멧돼지 도심까지 진출… 지하철 부암역 출구 인근
  2. 2문현2동 저장강박세대 청소 지원
  3. 3용호3동 찾아가는「행복나눔 음악회」개최
  4. 4한국해양대 LINC+사업단, 부산 6개 대학연합 산학관 협력 MOU 체결
  5. 5김세연 "황교안, 나경원 직책에서 내려오란 것 아냐"…의원 불출마 구심점 돼달라
  6. 6“권력형 입시비리” 성신여대 전 총장, 나경원 딸 입시 특혜 의혹에 입 열어
  7. 7부산 동구, 부산건축직업학교, 건설근로자공제회 삼자협업 사랑의 집수리 사업 실시
  8. 8김해신공항 검증 해넘겨…PK 여당 총선 전략 ‘비상’
  9. 9비타민의원, 동구에 성금 기탁
  10. 10“부산시, 자원재활용센터 불법 운영”
  1. 1해·수·동 규제 풀리자 부산 아파트 경매시장도 들썩
  2. 2부산 3165개 사업장 적용…중기 “환영” 노동계 “미봉책”
  3. 3짧게 맡겨도 최고 3% 이자 ‘파킹통장’ 짭짤하네
  4. 4영도 하리항 ‘지방어항’ 지정…해양관광 마을로 육성키로
  5. 5부산 ‘컨테이너 농장’ 사업 더 키운다
  6. 6조선기자재 기지개에 부산 수출 5개월째 흑자
  7. 7주가지수- 2019년 11월 18일
  8. 8부산에 극지 체험공간 한 달간 열린다
  9. 9캠시스 초소형 전기차, 부산 카페에 팝업매장
  10. 10전자증권제도 상장주식 9900만주 등록
  1. 1삼풍백화점 붕괴 후 건물 자리엔 주상복합 들어서, 사고 원인은?
  2. 2윤창호 사고 1년 만에 또 참변…애도 물결 이어져
  3. 3오늘 부산 날씨, 최저 온도 15도, 종일 흐릴 예정
  4. 418일 오후 전국 미세먼지 현황, 내일 미세먼지 예보는?
  5. 5패드립 뜻 뭘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생겨난 신조어
  6. 6오늘(18일)부터 김해공항 보안 등급 상향…공항공사 “평소보다 일찍 공항 도착해야”
  7. 7“이건 차별이 아니라…” '노튜버존' 등장에 누리꾼들 반색
  8. 8경남도 특별사법경찰, 처방전 없이 전문의약품 판매 10개소 적발
  9. 9경남도, 인공지능(AI) 활용한 통합돌봄 서비스 추진
  10. 10국가 중대사 땀 흘려 알리는 표충비 ... 1리터 가량 땀 흘리자 “무슨 일 생기나”
  1. 1호날두 이번엔 ‘골 도둑’…찜찜한 99호골
  2. 2벤투호, 19일 ‘몸값 7배’ 삼바군단 브라질과 맞대결
  3. 3‘그리스 신성’ 치치파스, 남자 테니스 왕중왕 등극
  4. 4‘제2 이승엽’이 없다…한국야구 해결사 발굴 숙제
  5. 5NFL 구영회, 복귀 두 번째 경기도 활약
  6. 6‘고수를 찾아서2 특집’ 마샬아츠 트릭킹의 매력에 빠지다
  7. 7한국 야구 12년 만에 올림픽 무대 밟는다
  8. 8국제신문배서 부경경마 ‘백문백답’ 우승
  9. 91위 한국과 4위 투르크가 승점 단 2점차…안갯속 H조
  10. 10“지난 10년 토트넘 영입 최고 선수는 손흥민”
국제신문-KLJC 공동 인터뷰
강필구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장 "진정한 지방자치 위해 정당공천제 폐지돼야"
국제신문-KLJC 공동 인터뷰
신원철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장 “시도의회 인사권독립과 전문인력 도입 절실"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부산의 원도심, ‘문화도시’와 어울리지 않는가
감동스러운 도시건축을 만나고 싶다
기고 [전체보기]
고양이와 쥐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 /이용희
지역민과 마을활동가가 함께 만든 새뜰마을 /오광석
기자수첩 [전체보기]
365일 지스타 열리는 부산 기대 /배지열
아직 설익은 공무원 공로 연수제 /김성룡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솔로몬 심판’과 오늘 우리의 송사들
귀농 귀어 귀촌에도 균형발전 없는 나라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피리와 하프
힐링의 악기 ‘깡깡이’ 해금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수산인의 웃음을 보고 싶다 /유정환
‘외투 불균형’ 에 뒷짐 진 정부 /이석주
도청도설 [전체보기]
2세 정치인
‘반중’ 대자보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中 ‘문학 한류’ 이끄는 정지용의 울림
가을과 다섯 수레의 책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특별한 갈치구이 한 토막
베트남의 포와 반미
사설 [전체보기]
역대 최대 흥행 지스타, 영구 개최 위해 모두 힘모아야
미 잇단 유화 제스처…북미 실무협상 조속히 재개되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정의를 갉아먹는 ‘합법적 불공정’
‘소산소사’의 사회, 고용연장이 해법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인생 2막에 이룬 성공
절망 속에서 탄생한 명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기생충
정신 줄 놓지 말고 다시 도전하자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니가 가라, 험지’
선거제 개혁 물 건너 가는 건가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가을! 그 오랜 기억들
가을을 여는 모차르트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브랜딩의 미학, 보르도와인
우리 삶은 아름다운가 - 토스카나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조선 시대 만다라 문양 민화
호생관 최북의 ‘지두해도(指頭蟹圖)’
  • 충효예글짓기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