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문태준 칼럼] 익산 팸투어의 감흥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4-25 19:25:50
  •  |   본지 30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얼마 전 전북 익산시의 초청으로 팸투어를 다녀왔다. 팸투어는 언론사 기자 등이 지자체의 초청을 받아 관광지를 탐방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익산시 초청 팸투어에는 시인, 소설가, 국어학자 등이 함께했다. 문학인들은 창작의 모티프를 얻을 수 있고, 국어학자들은 방언의 용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 참여자들의 기대가 컸다. 특히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는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2015년 7월 독일의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됐다. 익산 시민들은 익산을 ‘백제 왕도(王都)’라고 칭했다.

나는 예전부터 미륵사지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미륵사는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음이 그동안 밝혀졌다. 백제 무왕에 관한 얘기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 ‘삼국유사’에는 미륵사 창건설화가 실려 있다. 어느 날 무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師子寺)로 가는 길에 용화산 아래 큰 못가에 이르렀는데 그 못 가운데서 미륵삼존이 출현했다. 부인이 그곳에 큰 절을 지어줄 것을 무왕에게 청했다. 못을 메우고 평지를 만들어 금당과 탑, 회랑을 세우고 절 이름을 미륵사라고 했다.

백제 무왕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를 사모하여 ‘서동요’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다는 인물이다. 무왕의 어릴 적 이름은 서동(薯童)이었다. 마를 캐서 팔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서동요는 선화공주가 밤마다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노래였다. 이 노래가 널리 퍼지자 왕은 선화공주를 귀양 보내게 되고, 서동이 기다리고 있다 선화공주를 데리고 백제로 돌아가 본인은 왕이 되고 선화공주를 왕비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세 개의 탑과 세 개의 금당이 회랑으로 구획돼 각각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미륵사의 큰 특징이었다. 국보 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은 서원(西院)에 위치한 석탑으로 반파된 상태로 남아 있다가 최근에 복원됐다. 중원의 탑지는 목탑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며, 동원의 석탑은 1992년 9층 석탑으로 복원됐다. 아주 넓은 절터에 서서 나는 가만히 부는 한 자락의 바람을 보았다. 그리고 한 시대의 성쇠(盛衰)를 보았다.

쌍릉과 왕궁리 유적지 내 세워져 있는 오층석탑도 둘러봤다. 특히 왕궁리 유적지에는 벚꽃이 만개해 많은 시민으로 붐볐다. 오층석탑 둘레를 탑돌이하고, 백제인의 옛 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밤 시간에는 유적지를 천천히 걸어가며 옛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는 야행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시민의 호응이 좋았다.

고도리에 있는 석불 입상을 봤을 때의 기쁨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200여 m의 간격을 두고 두 석불 입상이 마주보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손과 옷, 얼굴의 생김새를 아주 간략하게 표현해 놓았다. 가늘게 뜬 눈이며, 작은 입가에 엷게 번지는 미소, 낮은 코, 갸름한 얼굴의 선(線) 등이 인상적이었다. 팸투어에 동행한 안도현 시인은 이 석불 입상들을 본 소회를 일찍이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이라는 시에 담았다.

‘내 애인은 바위 속에 누워 있었지 / 두 손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지 / 누군가 정(釘)으로 바위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들렸지 / 내 애인은 문을 밀고 바깥으로 걸어나왔지 / 바위 속은 환했지만 바깥은 어두웠지 / 내 애인은 옛날부터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 정으로 석불 입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사랑의 발견에 빗댄 작품이었다. 또한 누구든 제 가슴 깊은 곳에 묻혀 있을 그리운, 단 한 사람을 떠올려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팸투어 기간 열린 간담회 자리에서 나는 안도현 시인의 이 작품이 고도리 석불 입상을 널리 알리는 데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밝히기도 했다.

익산 팸투어를 하면서 잠깐 들른 가람 이병기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도 인상적이었다. 생가의 탱자나무 아래에 오래 서 있기도 했는데 수령이 200년이 넘었다고 했다. 정자를 지었고, 연못을 팠으며, 슬기를 숨기고 겉으로 어리석은 채 한다는 뜻으로 사랑채 이름을 ‘수우재(守愚齋)’라고 지었는데 국문학자이면서 시조시인이었던 이병기 시인의 인품을 느낄 수 있었다. 술과 제자, 난초라는 세 가지 복을 타고 났다고 스스로 말했던 가람 이병기 시인.

시인 정지용이 소설가 이태준에게 보낸 편지에는 “가람 선생께서 난초가 피었다고 22일 저녁에 우리를 오라십니다. 모든 일 제쳐놓고 오시오. 청향복욱(淸香馥郁)한 망년회가 될 듯하니 질겁지 않으리까”라고 썼을 정도였다. 풍류객이요 선비요, 교육자였던 이병기 시인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시비에 새긴 ‘창(窓)’이라는 시조를 가만히 읊조려 보았다. ‘우리 방으로는 창(窓)으로 눈을 삼았다 / 종이 한 장으로 우주(宇宙)를 가렸지만 / 영원히 태양(太陽)과 함께 밝을 대로 밝는다 // 너의 앞에서는 술 먹기도 두렵다 / 너의 앞에서는 참선(參禪)키도 어렵다 / 진귀(珍貴)한 고서(古書)를 펴어 서권기(書卷氣)나 기를까 / 나의 추(醜)와 미(美)도 네가 가장 잘 알리라 / 나의 고(苦)와 락(樂)도 네가 가장 잘 알리라 / 그러나 나의 임종(臨終)도 네 앞에서 하려 한다.’

팸투어를 다녀온 후 나는 다른 지자체에서도 더러는 이런 기획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한 지역의 지형과 역사, 유적지, 복식과 음식, 인심과 지방어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탐방의 경험을 글 쓰는 이들이 작품 생산으로 이어간다면 지역을 알리는 데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남해 금산이나 영주 부석사, 울산 반구대 암각화, 담양 소쇄원, 섬진강변 진메마을, 순천 와온해변 등은 시와 소설 작품을 통해 일반인에게 더 잘 알려진 경우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인문학을 등한시하는 시대에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을 초청해 오랜 시간이 쌓인 곳들을 두루 살펴보게 해준 익산시의 기획은 신선했다. 감흥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시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5. 5“국제신문 위기는 민의 위기” 지역사회 잇단 지지
  6. 6[사설] 신세계타운, 센텀시티의 새 도약과 부산의 미래 이끌길
  7. 7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8. 8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9. 9“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10. 10“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1. 1820조 예산전쟁 개막…여야 ‘3대 메가·미래기금’ 격돌 예고
  2. 2박수영 ‘국쫌만’ 300회…888건 민원 풀어
  3. 3주민자치회 정식 출범 원년…유럽 모범사례 현장을 가다
  4. 4‘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5. 5“7개 정당 19명 치열하게 토론…대화·설득으로 의견 일치 봐”
  6. 6민주, 조희대 ‘계엄 동조’ 여부 정조준
  7. 7서범수 의원, 농지 훼손·환경오염 막는 강화 법률 개정안 발의
  8. 8이 대통령 '순방 외교' 공방, '돼지 눈엔 돼지" 표현 논란도
  9. 9사천 공군기지 훈련기 공중 충돌 뒤늦게 알려져…부상자 없어
  10. 10北, 집속탄두 위력 과시…‘축구장 18개 면적’ 초토화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5. 5편의점 번진 요거트 인기…세븐일레븐 ‘요즘’과 맞손
  6. 6부산은행 김해공항점 계속 운영
  7. 7롯백 편집숍 ‘시시호시’ 부산 감성 입었다
  8. 8중산층 10명 중 4명 벌이 줄었다
  9. 9조선 빅3 공동납품망 완성…부산 기자재 플랫폼 안착(종합)
  10. 10‘고부가 데이터’ 노린 AI해킹…새로운 보안 패러다임 급부상
  1. 1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2. 2“국제신문 위기는 민의 위기” 지역사회 잇단 지지
  3. 3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4. 4“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5. 5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6. 6여전한 특수학교 님비 “주민체육시설 끼워 짓자” 고육책
  7. 7경비·미화 넘어 AI·관광 전문가로…은퇴 뒤 더 빛나는 삶
  8. 8국힘 과반 양산시의회, 민감한 3개 안건 부결 왜?
  9. 9대학·마을에 스며든 이전 기관…지자체는 정주지원 화답
  10. 10“부산형 상병수당, 고령노동자도 줘야”
  1. 1“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2. 2“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3. 3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4. 4삼성, KIA 6-1 꺾고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5. 5BNK, 여자농구 개막전 ‘디펜딩챔프’ KB 완파
  6. 6‘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7. 7“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8. 8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9. 9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10. 10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호감과 비호감 사이
클릭으로 여는 독도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신세계타운, 센텀시티의 새 도약과 부산의 미래 이끌길
대통령의 SNS 신중함과 절제로 국정 신뢰 지켜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SNS라는 광장,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있는가
반복된 일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법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