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국회의원과 실손보험회사에서 청구간소화법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병·의원에서 받은 서류를 환자가 실손 보험사에 청구했지만 앞으로는 병·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해당 서류의 전송 업무를 위탁받아 진료비를 청구하는 방식이다. 환자 입장에서 편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자동차보험 청구 체계를 보면 앞으로 국민과 의료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예전에는 보험에 가입된 차량 사고로 다친 환자는 보험사에서 직접 병원에 진료비를 지급했으나 2013년부터 심평원에서 자동차 사고 진료비를 심사한 후 과잉진료라고 판단하는 금액은 병원에 지급하지 않는다. 이것도 얼핏 보기에는 보험료를 줄이는 좋은 제도라 국민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현재 국내 의료제도에는 의료 보험이 되는 급여 재료는 병원에 들어오는 가격만큼만 환자에게 받을 수 있는 실거래가제도가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즉 의료보험이 되는 약품이나 치료 재료대는 병·의원에서 전혀 돈을 남길 수 없다. 그래서 병·의원은 입원료, 기술료(수술료 등) 및 비급여 진료에서 수익을 남긴다. 이 수익이 2017년 기준 국내 병원 전체 매출의 1.2%다. 그런데 자동차 보험은 비급여 재료도 병원에 들어오는 가격만큼만 받도록 되어 있다. 병원 입장에서는 치료에 필요한 모든 약품 및 재료에서는 수익을 남길 수 없다는 뜻이다. 교통사고 환자를 많이 치료하는 이국종 교수 개인이 연 10억 원 적자인 이유는 이런 제도 때문이다. 그는 그간 과잉진료를 한다고 폄하됐다. 병·의원 입장에서는 수술 등 위험 부담이 있는 치료를 해도 적자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수치료 등 약품이나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 치료에만 집중한다. 실제 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를 하면 적자이고 도수치료같이 꼭 필요하지 않은 치료를 해야 수익이 남는 기형적인 구조인 것이다. 그나마 도수치료는 이제 자동차 보험환자에게는 할 수 없게 됐다. 환자와 병·의원은 손해를 보고 보험회사는 수익이 점차 늘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가장 큰 보험사 한 곳의 1년 순수익이 국내 병원 전체 순수익의 두 배가 되는 이유이다. 병원에서는 좋은 재료를 쓸 이유가 없어지고, 의료를 모르는 환자는 좋은 재료로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청구간소화법안은 국민 편의 증진이 아니라 보험사나 가입자와 어떠한 사적 계약이 없는 의료기관에 행정 부담을 전가하는 위헌적 입법이자 보험회사 특혜 법안이며 사기업의 일을 국가기관에서 대행해준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입자의 질병 정보에 대한 보험사의 정보 축적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또한 자동차보험처럼 병원에 진료비를 주지 않는 수단이 될 것이다.

자동차보험 선례를 보면 결국 심평원에 의뢰해 이국종 교수의 경우처럼 삭감을 하게 되고 삭감을 당하게 되는 치료는 병·의원에서는 하지 않게 된다. 결국 환자들은 좋은 치료를 받지 못한다. 이 법안은 3200만 명 이상 되는 실손보험 환자나 68만5000명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는 병·의원에게는 나쁜 법안이고 단지 3만여 명을 채용하고 있는 보험업계에는 좋은 법안이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살리려 애쓰는데 왜 대기업만 좋게 하는 이런 법안이 발의되는 걸까. 일부 중소기업이 불법적인 일을 한다고 전체 중소기업을 힘들게 할 것인가. 필자는 의료계의 힘이 약해 그렇다고 생각한다. 국회에 소위 로비도 못 한다. 언론사 입장에서 언론 광고도 대기업에 비하면 병·의원 광고는 하찮은 부분일 것이다. 보험회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정부 말대로 의료가 공공재이고 정부의 직접 투자가 9.7%밖에 되지 않는다면 정부와 국회는 최소한 병의원이 살아남을 수 있게는 해줘야 한다.

매년 8% 이상의 병원이 문을 닫고 있다. 정부가 설립한 일산공단병원 발표처럼 원가 62.2%의 의료수가로는 대부분의 병의원이 비급여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 병원에서 지난 20년간 적자가 나지 않은 해는 딱 1 년뿐이었다. 이 법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기업을 위한 법안이다.

박원욱병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