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부터 나루히토(59) 새 일왕의 시대가 시작된다. 연호는 ‘레이와(令和)’다. 연호란 군주제 국가에서 임금이 즉위하는 해에 붙이는 이름으로, 서기 대신 사용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이를 원호라 통칭하는데 관공서의 서류 등 일상생활 속에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필자도 유학시설 각종 서류에 생년월일을 일제강점기 일왕인 히로히토의 연호인 ‘쇼와(昭和) 몇 년’으로 기입해야만 했다. 연호 사용 의무는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호에는 일왕의 존재가 내재돼 있어 무의식적으로 일왕의 권위 아래 놓이게 되는 셈이다.
일본의 국민적 관심사인 연호를 결정하는 과정은 매우 비밀스럽게 진행됐다. 당초 6개의 후보가 있었지만 어떻게 최종 결정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공영방송인 NHK조차도 후보 단어의 발음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어 예상되는 복수의 발음을 소개할 뿐이었다. 아주 중요한 단어인 만큼 전국 공모를 하거나 국민 의견을 물을 만도 한데 철저하고도 은밀한 가운데 진행되고 발표됐다.
국제신문에 의하면 일본정부는 지난달 1일 나루히토 새 일왕 즉위를 한 달 앞두고 열린 임시각의에서 ‘헤이세이(平成)’를 대체할 연호로 ‘레이와’를 선정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레이와’에는 ‘아름답게 마음을 맞대면 문화가 태어나고 자란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러나 ‘레이와’의 뜻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로이타통신은 ‘레이’ 즉 ‘령(令)’은 주로 ‘명령’의 의미로 사용되는데, 권위주의적 뉘앙스가 일부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BBC 전자판에서는 ‘령’은 명령, ‘화’는 조화나 평화를 의미한다고 보도하고, 다만 ‘령’에는 좋다는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부랴부랴 일본정부는 ‘레이와’의 의미를 외국에 ‘아름다운 조화(beautiful harmony)’로 설명하도록 지시했다. 아사히신문 지난 4일 자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명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야당에서는 “레이(令)는 명령을 뜻하는 것으로 아베 정권이 지향하는 국민에 대한 규율과 통제 강화가 드러난다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연호는 일본의 패망과 역사를 같이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일본에 군정을 실시하고 더글라스 맥아더를 사령관에 임명해 전권을 부여했다. 그는 일왕을 정점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일본의 특징을 잘 알았고, 일왕의 권위와 영향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일왕을 전범재판 법정에 세우는 것보다 존속시키는 것이 미군의 점령정책에 더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맥아더는 일왕을 유지시키는 대신 전범의 상징인 연호제는 폐지하도록 했다. 그러나 전후 자민당은 연호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1976년 1월 ‘원호법제화 실현국민회의’를 발족했다. 야당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해 7월 연호를 정령(政令)으로 하고 왕위 계승이 있을 경우에 한해 개정한다는 내용의 ‘원호법’을 공포했다. 이 법에 따라 관공서의 서류에 연호사용이 강제되고 의무화됐다. 이후 1989년 1월 히로히토 일왕이 사망한 후 새 연호의 제정을 둘러싸고 다시 한번 존폐가 쟁점화 됐지만 자민당 정권의 의도대로 ‘헤이세이(平成)’라는 연호가 제정됐다.
1979년의 원호법과 1989, 2019년의 새 연호는 여러 정당의 엇갈린 입장에도 불구하고 모두 자민당 정권의 뜻대로 제정됐다. 일상 생활 전반에서 일본 국민의 의식을 보수 지배계층이 의도하는 대로 유도하고자 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새 연호인 ‘레이와’도 대내외적으로 표방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조화’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새 일왕 나루히토는 패전국 일본의 책임자였던 히로히토 일왕의 손자이다. 그가 앞으로 어떠한 행보를 하게 될지 지켜보자. 특히 한국을 비롯해 수많은 피해를 입은 아시아 국가들과 연호의 뜻대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지 주목하자. 주변국에서 새로운 일왕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부산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