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부산에서 자랐기에 지금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광팬이다. 지난달 2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두산과의 경기를 아이들과 관람했다. 이날도 롯데는 두산에게 졌고 다음 날인 일요일도 패해 올 시즌 두산전 5전 전패를 기록했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롯데는 부산을 상징하고 고향을 떠올리는 매개체이다. 서울에서 듣는 부산갈매기는 고향을 떠난 부산사람에게는 자기정체성을 확인시켜 준다. 전 세계 어디에 살든 부산사람에게 ‘해운대 바다와 사직구장’은 잊을 수 없는 로망이자 추억이다. 비록 롯데가 프로야구 출범 후 한 번도 정규시즌 우승을 못했지만 부산은 누가 뭐라해도 야구의 도시이다. 지금도 경성대와 부경대 근처의 대학가 대부분 음식점은 오후 6시30분이 되면 롯데의 야구경기를 튼다. 부산은 그런 도시다.
2013년 4월 KBO는 부산시와 기장군을 한국야구 명예의전당 건립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했다. 당시 한국야구 명예의전당 건립 사업은 한국야구 100년, 프로야구 30년을 기념해 KBO가 추진하는 숙원 사업으로 부산과 서울, 인천 등 3개 도시가 유치전을 펼쳤다.
부산이 한국야구 명예의전당 건립지로 결정된 배경에는 부산 시민의 야구에 대한 사랑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이 사업은 미국야구 명예의전당(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 and Museum)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미국야구 명예의전당은 미국 뉴욕주 쿠퍼스타운에 있는 사설박물관으로, 미국야구 역사를 연구하고 야구와 관련된 기념물을 전시하기 위해 선수, 감독, 심판 등의 활동으로 공헌한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됐다.
야구팬에게 미국야구 명예의전당은 단순한 박물관 시설이라기보다는 헌액된 선수, 감독, 심판, 행정위원, 야구 개척자들을 두루 볼 수 있는 일종의 판테온이다. 1939년 6월 12일, 명예의전당이 쿠퍼스타운에 건립된 것은 대공황 시절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관광객 유치 목적이었다. 뉴욕주 시골에 위치한 쿠퍼스타운은 미국야구 명예의전당 때문에 지금도 매년 35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특히 2014년 헌액식에는 4만8000명의 팬이 헌액식장을 찾기도 했다. 한마디로 야구의 성지 역할을 한다.
야구 명예의전당은 헌액식부터 다양한 야구 관련 행사가 이뤄지는 관광명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여러 가치를 지닌 한국야구 명예의전당 사업이 좌초 위기에 빠졌다. 핵심은 부산시가 당초 약속과 달리 운영비 지원에 소극적이고, 부산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018년 한국야구 명예의전당 설계 비용 2억 1700만 원을 삭감했다.
KBO이사회는 부산시가 더 이상 한국야구 명예의전당 건립에 관심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부산시는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달 선정을 앞두고 있는 국가대표 축구종합센터 유치에 24개 지방자치단체가 뛰어들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30만 ㎡의 땅도 무상으로 내놓겠다는 것이 오늘날 지방자치단체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야구 명예의전당 건립에 대한 부산시의 접근은 시대착오적이다.
시계를 2012년으로 되돌려보자. 부산시민의 열정적인 야구사랑 이외에는 서울과 인천보다 부산이 나은 것이 없었다. 유치위원으로 서울을 자주 드나들던 필자가 제일 힘들었던 것이 “한국야구 명예의전당을 지방으로 보낼 순 없다”는 반대 논리였다. 다행히 기장군의 청사진이 괜찮았고 부산시 공무원의 열정과 유치위원들의 노력으로 부산으로 유치했다. 당시 ‘무엇 하나 지방으로 유치하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부산시가 한국야구 명예의전당에 소극적인 이유는 부산시의회의 비협조와 운영비 부담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야구 명예의전당은 일반 박물관과 달리 상징성이 크고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만일 부산시가 포기하면 한국야구 명예의전당은 2025년쯤 한강변에 들어설 잠실 새 야구장에 건립될 공산이 크다. 지금 야구계는 한국야구 명예의전당이 서울에 오기를 바라고 있다. 부산시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시간은 부산편이 아니다!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