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날 나는 버스를 타기 몇 시간 앞서 목련꽃에 취해 있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는 박목월의 ‘4월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화사한 봄날이 충만해 있었다. 시간마저 달콤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 아, 이것이 진정 봄이구나! 그때였다. 툭, 한 송이 목련꽃이 떨어졌다. 익숙하고 잘 정돈된 봄의 흐름이 한순간 흐트러져 버렸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떨어진 목련꽃 송이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2.
길가에 세워둔 순찰차에 기댄 젊은 순경도 멍하니 흩날리는 꽃을 보고 있었다. 그 길은 평소에 차들도 많지 않고 해서 마을사람들이 그냥 자유롭게 건너다닌다. 버스가 오자 나는 별 생각 없이 길을 건너갔다. 무심해 보이던 젊은 순경이 손짓을 했다. 설마 내 쪽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테지…. 슬쩍 보고는 버스 쪽으로 갔다.
“어엇, 아저씨잇!”
갑자기 그가 소리를 질렀다.
이른바 무단횡단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이런 길에 무슨? 꽤 황망한 상황이었지만 약속 시간에 쫓기는 나로서는 그 버스를 타야 했다. 해서 미안하다는 목례를 하고 버스를 타려했다. 그 정도로 사과하면 씩 웃으며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젊은 순경은 정색을 하고 훈계를 한다. “멀쩡한 사람이 말이야….”
3.
아들이나 학교 제자뻘 되는 젊은 순경에게 실컷 면박조의 훈계를 듣는 수모를 당하고 나서 다음에 온 버스에 올랐으나 기분이 너무 찝찝했다. 체면이 형편없이 구겨져버렸다. 차라리 ‘이런 길에 무슨 무단횡단이오? 단속도 때와 장소를 보고 해야지, 당신 맘대로 해라!’하고 벌금이라도 무는 게 나을 뻔했다고 후회했다.
승객은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중년의 여자 승객 한 명이 버스가 멈추지도 않았는데 미리 일어나서 출구 쪽으로 가서 기다린다. 저만큼 앞쪽의 운전기사가 ‘버스가 서지도 않았는데 움직였다’고 나무란다. 나무라는 목소리가 사뭇 짜증스럽다. 그 중년의 여자 승객은 느닷없이 날라 오는 운전기사의 꾸짖음을 고스란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서는 다음 정류장이 가까워지면서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승객 몇몇이 미리 일어나 출구 쪽으로 가서 대기했다. 운전기사의 꾸중이 그들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멀쩡한 사람들이 특별한 잘못도 없이 욕설 비슷한 말을 듣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내리고 버스가 움직이면서 운전기사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이제는 모든 승객에게 ‘수준이 낮다느니, 의식이 없다느니, 정차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규칙을 왜 지키지 않는가’ 하면서 짜증을 부렸다.
그러면,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는 승객들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고 나는 묻고 싶었지만 또 어떤 불의의 공격을 당할지 몰라 그냥 가만히 지켜만 봤다. 아니, 언제는 빨리빨리 일어나 준비를 하지 않는다고 면박을 당하기가 일쑤인데, 미리 일어난다고 저러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가. 언제부터 고객이 운전기사의 눈치를 보고 다녀야 하고, 그야말로 멀쩡한 사람이 버스를 탔다는 이유로 운전기사의 책망을 듣고 있어야 하는가.
물론 원칙은 버스가 멈추고 하차 승객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안전하게 하차해야 한다. 그런 질서를 그들 스스로가 지키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규칙을 지키라고, 그것도 고운 말이 아니라 험악하게 나무라면 승객들은 무엇이 되는가 말이다.
내가 내릴 정류장이 다가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하다. 물론 버스가 멈춘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겠지만 잘 정돈된 시간의 흐름이 언제 어디서 갑자기 깨질지 몰랐다.
4.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읽은 어느 분이 4월의 노래를 흥얼거린 나에게 ‘역사의식도 없는’ 그런 쓰레기 같은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며 삿대질을 할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던 것, 내 일상에서 편안하게 공존하던 것, 그 낯익은 시간들이 어느 날 불쑥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밀 것 같아 불안하다.
나쁜 일은 늘 한순간에 다가온다.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느닷없이 그렇게 불쑥 다가온다. 목련꽃 툭-하는 것처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