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차례 ‘조현병(정신분열증) 포비아’가 확산되고 있다.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의 후폭풍이 전국에서 거세다. 부산 북구 금곡동에서는 정신질환자 공동생활 시설 건립을 놓고 인근 주민들이 절대 불가하다며 집단 반발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신도시에서도 정신질환자 병상 120여 개를 갖춘 병원의 개원을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조현병 환자 이웃으로부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끔찍한 일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낳은 또 다른 모습이다.
여느 때 같으면 언론에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 데다, 이들 지역 주민의 반발 또한 시큰둥하게 여겨질 만한 사안이다. 자기 지역만 생각하는 ‘님비 현상’의 하나로 치부할 수 있어서다. 물론 이들 주민의 반대에 맞서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지 말고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런 원칙론적인 말로 해당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자기 집 주변에 이런 시설이 들어선다면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탓이다.
진주 사건 이후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구멍 뚫린 강제입원 제도, 경찰 등 국가기관의 미온적 대처, 부실한 정신질환자 고위험군 관리 체계 등으로 요약된다. 이런 지적들을 두고 대책을 위한 다양한 논의도 이어졌다. 대체적인 여론은 확산하는 ‘조현병 포비아’를 반영하듯 정신질환자를 강제로라도 입원 치료시켜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들의 비자의입원(강제입원) 여부를 법원이 판단하는 ‘사법입원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그 중 하나다. 요컨대 정신질환자를 마냥 방치할 게 아니라 국가기관이 더욱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면 왜 이런 사건이 꼬리를 물겠나. 강제입원 기준이 모호한 데다 질환자의 인권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서다. 사실 현재 맹점이 있다는 강제입원 제도 또한 그 산물이다. 2년 전인 2017년 개정된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요건을 엄격하게 한 게 핵심이다. 가족이 환자 의사와는 무관하게 멀쩡한 사람을 병원에 가두는 등 악용을 막자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진주 사건 이후 개정법의 맹점이 드러나면서 다시 정신보건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이 일고 있는 것이다. 생각만큼 간단치 않은 조현병 범죄 해법 마련의 딜레마다.
지난 1월 자신의 환자로부터 변을 당한 고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사법입원제 도입 등을 포함한 이른바 ‘임세원법’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강제입원 필요성과 환자 인권 보호라는 가치가 여전히 팽팽히 맞서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진주 사건 이후 강제입원을 옹호하는 여론이 늘어난 건 분명하지만, 여전히 임세원법의 연장 선상에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단순해진 여론만 마냥 좇아 속 시원한 대책을 내놓기 어려운 이유다.
어쨌든 사회도, 환자도, 가족도 모두가 불행한 조현병 범죄를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비록 어려운 사안이긴 해도 진주 사건을 계기로 국가기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은 분명하다. 정부 또한 조만간 장기종합계획을 수립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국 정신건강보건센터에 등록된 정신질환자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관리대책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관건은 또 다른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큰 사건 발생 이후면 여론에 몰려 으레 발표하는 반짝 대책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정부 대책에는 강제입원 사항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논란이 되는 강제입원과 인권 사이 최적의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지속 가능한 정부의 관심이다. 법적이고 제도적 문제도 필요하지만 결국 요체는 이를 실행할 손발이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 전국 지자체 산하에 정신건강보건센터가 있지만 제대로 체크되지 않았다. 인력이 부족한 데다 그마저 계약직으로 고용이 불안하니 제대로 된 관리는 언감생심이다.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놓은들 기초적인 조사와 관리가 부실해서야 백약이 무효다. 결국은 예산이다. 이번 정부 대책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임세원법의 당사자인 임 교수 유족은 ‘안전한 진료 환경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고인의 유지였다고 전한 바 있다. 임 교수든, 진주 사건 피해자든 이토록 황망하고 억울한 죽음도 없다. 이들을 해친 가해자야 합당한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과도한 ‘조현병 포비아’로 혐오 정서가 확산되는 것 또한 모두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조현병 환자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임 교수의 뜻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