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만2000 대 1. ‘신의 직장’ 입사 경쟁률이 아니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한 경쟁률이다. 지난달 루브르는 이곳의 상징인 유리 피라미드 건립 30주년을 맞아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와 함께 이 꿈같은 이벤트를 기획했고, 행운의 주인공이 된 20대 여성은 남자 친구와 함께 지난 4월 30일 그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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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1503~1506). |
사람들은 왜 모나리자에 열광하는 걸까. 아마도 르네상스시대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기 때문일 것이다. 르네상스시대를 산 다빈치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의융합형 인재의 표본이다. 회화에서부터 조각, 작곡, 시, 토목, 건축, 수학, 물리학, 해부학까지 다양한 분야에 능했던 그는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가장 약점이라고 여겼던 그림으로 가장 큰 명성을 얻었다.
모나리자는 그의 인생에 정점을 찍은 걸작이자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림 속 모델은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몰락한 지주 집안 출신인 그녀의 본명은 리자 마리아 게라르디니로 15세에 조콘도와 결혼했다. 그렇다면 다빈치는 왜 유명 귀족도 아닌 평범한 상인의 아내를 그렸을까. 이견이 있지만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그녀가 아름답고 매혹적이었으며 신비로운 미소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 추정한다. 실제 다빈치는 잘 웃지 않는 그녀의 미소를 얻기 위해 광대와 악사까지 동원했다고 전해온다.
그럼 눈썹이 그려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당시 미의 기준에 따라 모델의 눈썹이 원래 없었다거나 눈썹까지 미처 그리지 못한 미완성작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훗날 복원 과정에서 눈썹이 지워졌다는 견해가 가장 지배적이다. 또 왜 오른쪽 풍경의 수평선이 왼쪽보다 높은지, 어떻게 붓 자국이 전혀 드러나지 않게 채색할 수 있었는지 등 무덤 속 화가만이 아는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다빈치 역시 이 그림이 각별했는지 주문자에게 팔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가지고 다니며 조금씩 수정하고 덧칠했다. 그래서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평생에 걸쳐 제작한 역작이자 최후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이 그림이 오늘날처럼 세계적 명성을 얻은 건 1911년 발생한 도난 사건 때문이다. 프랑스와 미국 대표 일간지들이 사건을 앞다퉈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모나리자는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범인이 잡히면서 2년 만에 루브르로 돌아온 그림은 다시 한번 언론 세례를 받았고, 엄청난 복제품이 쏟아지면서 모나리자의 명성은 전설이 됐다. 이후 모나리자는 도난과 훼손 방지를 위해 방탄유리로 된 특수 유리벽 뒤에 설치됐다. 지난해 루브르를 찾은 관람객 수는 1000만 명이 넘었고, 그중 80%는 오직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서란다. 버락 오바마나 비욘세 부부만이 누렸던 단독 관람 기회를 얻고 싶은 게 어찌 18만2000명뿐일까.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