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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나는 느린 도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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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5-09 19:38:1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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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slow city)’로 불리는 특별한 마을과 지역들이 있다. 말 그대로 느린 도시들이다. 이곳에서는 자연의 생태적인 회복과 보전을 바탕으로 지역 전통과 공동체 문화를 지켜가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현대 문명과 전통적인 삶의 조화를 목적으로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개념은 언젠가부터 세계인이 참여하는 ‘국제 운동’으로 번져가고 있다. 전 세계 30개국 255개 도시가 슬로시티가 되었고, 또 되고 싶어 노력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무슨 이유로 이 도시들은 현대도시의 일반 흐름에 역행하려 할까. 타 도시들과의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고, 경제 발전을 위한 개발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고, 돈을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것도 해야 하는 현대도시에서 빠름이 아닌 유유자적하며 개발이 아닌 보전과 풍부한 물질이 아닌 마음의 풍요를 택하려 할까. 1999년이 그 시작이었다. 밀레니엄 시대를 기다리며 더 큰 번영을 꿈꾸던 해였다. 역설적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슬로시티 운동은 20세기의 풍요에 대한 반성과 자책, 그리고 21세기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했다.

최근 우리 마음을 묘하게 움직이는 특이한 용어들이 주변을 맴돈다. 휘게(hygge), 라곰(lagom), 오캄(au calme),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그리고 소확행(小確幸). 사용하는 나라는 제각기 다르지만, 모두 적당한, 안락함, 따뜻함, 소소함 등을 공통 개념으로 한다. ‘큰 욕심 없이 일상을 즐기며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뜻한다. 용어의 본질을 이해하니 동시에 뭔가가 ‘훅’하고 가슴 깊은 곳으로 밀려 들어온다. 그런 삶에 대한 공감으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사실 이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 나라들은 모두 1인당 GDP가 4만 달러를 넘어 5만을 바라보는 나라이다. 이는 경제가 발전 할수록 돈이 많아질수록 이런 삶을 추구하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갑자기 3만 달러 정도의 나라에서는 그런 삶을 추구할 수 없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우린 아직 멀었으니 늘 하던 대로 대규모 개발과 환경 파괴, 단절되어가는 공동체, 불신의 정치와 거친 사회 속에서의 삶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가. 휘게나 라곰,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일상은 억지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니 자생적으로 생겨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우리 삶의 악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뭔지 모를 전환점이나 강력한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지 않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현재 삶에 대한 대안으로 느린 삶에 대한 관심이 확장되고 있고, 실제 그런 삶을 살아보기 위한 도전들이 여기저기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 논의의 원류에는 산업혁명이 자리한다. 대량생산이 가져다 준 부와 편리는 수많은 사회문제와 도시문제를 낳았고, 전통적 삶의 질서 또한 교란시켰다. 산업혁명이 한창 달아오르던 200여 년 전, 스코틀랜드 시골 마을인 래너크(Lanark)에서는 로버트 오웬(Robert Owen)에 의해 또 다른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웬은 급변하던 문명 도시를 멀리한 채 뉴 래너크(New Lanark)라는 공장 도시를 운영하며 협동조합, 사회복지, 유치원 교육 등 당시 산업혁명으로 인한 부작용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안했다. 또 하나의 작은 사례.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주말에 발생하는 고속도로 체증 문제의 해결 방식을 도로 확충이 아닌 도시 내 쉴 곳(큰 공원 등) 확보에 주력했다고 한다. 당연한 것 같지만 평범치 않은 그들의 행보였다. 두 사례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오염과 혼잡으로 악화되는 현대문명 속에서 느린 삶을 추구하기 위한 창의적 발상, 즉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존을 위한 마음은 똑같았다.

우리의 도시들로 눈을 돌려 본다. 느린 삶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관점에 따라 여러 대안이 있겠지만 필자의 영역에서 최선의 준비는 ‘유유자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다양한 보행공간의 양과 질을 확장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준비는 ‘느린 이동의 방식을 선택하는 일’이다. 친환경적인 대중교통의 확충을 뜻한다. 최근 부산은 후자의 관점에서 쉽지 않은 여러 선택을 시도하고 있다. 전국 최초로 트램(전차)을 국가시범사업으로 조성하는 기회가 생겼다. 이와 함께 버스전용시스템을 점차 확대하고 있고, 차량 속도를 10km/h 감소하는 안전속도 5030 정책도 추진 중이다. 도시공학적 관점에서 보면 모두 느린 도시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부산은 체계적인 도시계획을 온전하게 거치지 못한 도시이기에, 또한 모든 시도가 기존 도로(공간)를 축소하거나 기존 시스템을 조정해야 하는 일이기에 자칫 전보다 못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린 도시를 향한 몸부림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이것이 바로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 혹독해질 수 있는 시대 환경 속에서도 더욱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최소한의 배려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데이터를 발견했다. 안전속도 5030 정책의 전국 최초 시범사업지(지자체 단위)인 영도구의 통계를 보니, 정책 시행 후 교통 사망사고, 보행사망사고, 심야 사고율 모두 30~40%씩 감소했고, 특히 통행속도를 10km/h 감소했음에도 차량 속도의 변화가 거의 없고 차량 정체율도 이전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교통의 자정작용 원리가 작동된 결과이다. 그렇다. 도시 내 교통 문제는 흐름의 단절과 변화에 따른 난맥에서 출발하기에 감속이 교통체증의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느린 도시를 위해 규명해야 할 진리 아닌 진리들이 줄을 서 있다.

보행공간의 양·질적인 확충과 느린 이동 방식들에 대한 선택은 중단되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돼야 한다. 그 도전과 지혜가 쌓이고 쌓여 지금 겪는 여러 걱정과 갈등을 자연스레 극복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분명 정반합(正反合)의 원리에 따라 모든 문제는 이 도시에서 새로운 질서로, 또 다른 기대와 상상하지 못했던 희망으로 나아갈 것이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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