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나 여당 대표 등이 지방을 방문할 때면 으레 나오는 말이 있다. 이번엔 어떤 ‘선물 보따리’를 풀까이다. 야당에서야 당연히 선거용이라며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만 그들 또한 그랬으니 괜한 트집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일. 대통령이나 여당 대표의 말 한마디에 온갖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대개조 비전 선포식’에 참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마트시티 지원 등 선물 보따리를 한 아름 안겼기 때문이다.
대통령 등 정부 여당이 지자체의 여러 사업에 전폭적인 지원 의사를 밝히는 것이야 좋은 일이다. 하지만 주는 측이든 받는 측이든, 솔직히 그때마다 선물 보따리 운운하며 생색을 내거나 감지덕지하는 게 영 마뜩지는 않다. 합당한 정책이라면 당연히 지원해야 할 일인데도 정부가 은혜(?)를 베푼 듯해 뒷맛이 개운찮은 것이다. 어쨌든 지방의 현실이 얼마나 열악하면 이럴까 싶기는 하다. 다만 조금 과장하자면, 오랜 중앙집권 체제에서 정부의 시혜에 길들여진 지방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한 건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민주당이 122개 수도권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내년 총선 공약으로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지난해 9월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밝힌 사안이다. 이후 야당이 “서울이 황폐화된다”고 반발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다 얼마 전 이 대표가 기관 선정 등 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언급하며 다시 논의가 불붙었다. 이대로라면 총선 전까지 공공기관 추가 이전 계획이 구체화되고 그 과정에서 또 한 차례 격론이 예상된다. 지방으로서야 이 문제가 공론화된다는 점에서 반길 일이다.
그러나 공공기관 이전 총선 공약 검토가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바라보는 집권 여당의 시각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해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마치 이를 지방에 대한 시혜성 선물 보따리로 여기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지역균형발전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과제이고, 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그 과정에서 새로 거론됐다. 그 계획대로 속도 있게 추진하면 될 일을 실컷 뜸 들이다 총선 표심잡기 카드로 쓰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년 총선이 끝나면 문 정부는 집권 후반기로 치닫는다. 지금 당장 논의해도 될까 말까 한 난제가 정권 말기에 제대로 추진될지도 의문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시부터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줄곧 강조해왔다. 지난해 2월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서는 일자리가 생겨나는 지역혁신 등 3대 전략과 혁신도시 시즌2 등 9개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관련 정책이 미흡했다며 “국가균형발전의 엔진을 다시 힘차게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지역균형발전은 집권 기간 내내 꾸준히 추진해야 할 당위이지 결코 지방을 위한 깜짝 선물일 수는 없다. 집권 여당이 이런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서야 일관성 있고 제대로 된 균형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의 의지 또한 의심스럽다. 균형발전 컨트롤타워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본회의가 지금까지 13차례 열렸으나 문 대통령은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관련 회의 등에 무려 29회나 참석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지난해 2월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서 밝혔던 강한 의지는 상당히 약화된 듯하다. 노무현 정부보다 더 발전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던 당시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이다. 노 정부보다 더 발전하기는커녕 균형발전 철학과 정책이 빈약하다는 진단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이러니 여당에서 공공기관 추가 이전을 표심잡기를 위한 선물용 정도로 여기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지방소멸을 가속화시킬 수도권 3기 신도시 정책까지 내놨다. 그나마 노 전 대통령이 심은 균형발전 씨앗이 고사하는 역주행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노 전 대통령과 같은 뚝심이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말처럼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관련 부처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지역균형발전을 표로만 연결하려는 여당의 시각도 결국 문 대통령의 미지근한 추진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 정부도 벌써 집권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누차 강조한 초심으로 돌아가 지금이라도 구체적인 지역균형발전 비전을 내놓아야 옳다. 표심은 진정성 없이 급조한 공약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다. 꾸준히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뚝심을 보인다면 지방의 민심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무엇이 지방을 위한 진짜 선물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새로운 시동을 걸어야 한다.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