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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나이 듦의 미덕’이라는 어려운 과제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23 19:03:4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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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임에 가니까, 팔십도 안 된 친구가 영감 노릇을 하더라니까. 내 참….”

날이 화창해 친구와 산행을 했다. 등산로 쉼터의 정자에는 어르신 대여섯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정자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둘러앉아 있었지만, 나는 한 귀퉁이에서 잠시 쉬어가려고 했다. 내 친구는 옆구리를 툭 치며 그냥 가자고 했다. “왜?” 친구가 씩 웃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답했다. “나이 물어볼까 봐.” 그분들은 모두 여든이 넘었을 터, 일흔이 내일모레라 해도 아직 한참 ‘어리니’ 자리를 피하고 싶었던 게다.
산 정상을 지나 계곡으로 내려오니 허기가 졌다. 싸 온 김밥을 먹는데, 친구가 종합비타민 정제를 건넸다. “다 몸에 좋으니까 먹어둬!” 식후에는 주스 형태로 된 건강식품도 건넸다. “마시고 좀 젊어지라고.” 친구는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라면 지키지도 못할 건강 지침들을 두루 꿰고 있었다.

하산해서는 다른 친구들까지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학창시절 이야기로 시작해 소주잔이 한두 배 돌고 나면 정치 이슈에까지 이른다. 65세 이후의 이른바 ‘노년층’ 사람들이 정치 사회적으로 보수 성향을 띠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른다. 언론의 통계를 보아도 그렇다. 하지만 모두 의견이 같다 보면 서로 맞장구치며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비판에 괜히 열을 올리기에 십상이다.

요즘은 모두 ‘백세 시대’라면서 ‘젊게 살자’는 것을 생활의 신조로 삼는다. 그런데 백세 시대와 젊게 살기는 함께 갈 수 있을까. 서로 반비례하는 것을 억지로 비례하도록 맞추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 차이가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크고 작은 퇴행성 질환을 앓게 마련이다. 뉴스에 등장하는 ‘건강한 백 세 노인’은 특별한 예이지, 보편적이지 않으며 그 ‘건강함’의 정도도 잘 보아야 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평균 수명은 늘어났어도 건강 수명은 별로 늘지 않은 것이 통계적 사실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일흔다섯 되던 해에 ‘나이 듦의 미덕’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그도 여기서 사람들을 건강 강박증으로 몰고 가는 사회 현상의 문제를 지적했다. “건강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혼란스럽고 상충되는 충고를 들어야 했다. 또 수많은 책과 잡지, 신문 기사와 광고에 압도되었다. 특히 광고는 건강을 염려하고 무언가 살 수 있는 돈이 있는 노인들을 무차별 공격한다.”

젊게 산다는 것은 신체적 건강과 외모 관리, 그리고 신세대의 생활양식을 따라잡으려 하거나 노익장을 과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카터가 말했듯이 자신에 대한 통제력, 노인이 된 자신에 대한 관심과 존중, 그리고 좋은 인간관계와 목표 있는 삶을 의미할 수도 있다. ‘노년에 대하여’라는 고전적 저술을 한 키케로가 상징적으로 말했듯이 ‘영혼 그 자체의 활력’이 진정한 건강이며 젊게 사는 비결일 수도 있다.

과잉 의료와 지나친 다이어트, 건강식품 섭취보다는 오히려 ‘영혼의 활력’으로 표현되었던 고전적 지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신경과 전문의인 올리버 색스는 “건강이나 웰빙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뇌와 연관 지어 특별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노화가 반드시 신경학적, 곧 뇌과학적 질환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며 ‘나이든 뇌’와 ‘노쇠한 뇌’는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체의 주요 기관들, 즉 심장 폐 신장 등의 기능은 자동으로 진행되며, 평생 거의 기계적이고 매우 획일적이지만 뇌 기능은 다르다. 올리버 색스는 뇌와 관련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평생에 걸쳐 지속해서 발달할 수 있는 잠재력’임을 강조한다. 인간의 뇌가 결코 자동적이지 않은 이유는 ‘지각적 수준에서 철학적 수준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범주화하고 재범주화 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인생 경험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늘 노력할 수 있다. 인생 경험은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고 도전적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포괄적인 통합을 요구한다는 게 ‘진짜 삶’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는 다른 기관들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작동하며 획일적인 기능을 유지해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노화하는 사람의 수명과 활력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따라서 ‘뇌가 건강해지려면 최후의 순간까지 활발하고 삶을 경이로워하며 탐구해야 한다’. 이는 신체 기관과 외모의 젊음은 자연을 거스르는 무모한 도전이지만, 뇌의 건강은 잠재적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인문 고전과 현대 과학이 만나는 이 지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관습적 사고와 고정관념, 카터가 말했듯이 “시대의 변화를 싫어하거나 거부하려는 완고한 모습들”은 건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치사회 현상을 대하는 노년 세대의 성향이 획일적이며 그저 시류에 영합하는 사회 역시 건강하지 못하다. 키케로가 전하듯이 ‘새로이 많은 것을 배우면서 늙었다는 솔론의 말은 존중될 만하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 활동을 하는 데 수동적으로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카터의 말도 귀 기울일 만하다.

고령화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피상적으로 젊게 사는 게 아니라, ‘제 나이를 새롭게 사는 것’이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우리는 그때그때 제 나이를 새롭게 사는 법을 배워가야 한다.

‘나이 듦의 미덕’은 어려운 과제이다. 어렵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남을 따라 하지 않을 자율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활력이다. 올리버 색스도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성취해야 할 것은 ‘개인의 관점’과 ‘일종의 거리 두기’라고 했다. “오랜 인생 경험을 종합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노년은 독립적이며 ‘긍정적인 개인주의’를 실천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사회 적응을 시작하는 젊은이와 달리 노년에 이르면 사회적 부적응을 특별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물론 근본적인 차원에서 그것은 한 인간이 평생 추구하는 ‘자아 찾기’의 실현이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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